'상고허가제' 부활 검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0면

대법원이 심리 전에 사건을 각하해 재판 부담을 더는 '상고 허가제'의 부활을 검토하고 있다. 또 중요 사건을 공개적으로 진행하는 '공개변론 재판'의 도입을 추진 중이다.

대법원은 최근 대법관 임명 제청 문제로 부각된 대법원의 기능과 역할을 개선하기 위해 대법원에 올라가는 사건 수를 합리적으로 제한하는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고 27일 밝혔다.

대법원 관계자는 "업무 부담을 줄여 궁극적으로 중요한 가치판단 사건만 다루는 '정책법원'으로 거듭나는 차원에서 상고허가제 등이 논의되고 있다"며 "최종 결정은 앞으로 구성될 사법개혁기구에서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대법원은 1990년 상고허가제를 폐지했으며, 이를 보완하기 위해 94년부터 형사사건을 제외한 상고사건 가운데 일부를 정식 재판을 하지 않는 심리불속행제도를 도입했다.

상고허가제 도입 검토에 대해 대한변호사협회 등은 헌법에 보장된 재판 청구권을 제한할 수 있다며 반대하는 입장이다.

변협 도두형(陶斗亨)공보이사는 "심리불속행제도로도 충분히 중요하지 않은 재판을 걸러낼 수 있는데도 과거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폐지된 제도를 굳이 부활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학계는 상고허가제의 부활을 원칙적을 반기면서도 하급심의 강화가 선행돼야 한다는 입장이 우세하다.

경희대 서보학(徐輔鶴)교수는 "궁극적으로 대법원은 정책적으로나 법률적으로 중요한 판단만을 내리는 법원이 돼야 한다"면서 "이를 위해 1심 재판에 인사나 제도적으로 힘을 실어주는 개선이 우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대법원은 이르면 올해 안에 사회적 가치판단과 직결된 중요한 사건을 공개 변론 재판하는 제도를 마련할 예정이다. 대법원 관계자는 "한총련이나 호주제 폐지와 같은 중요한 사건의 경우 변론 재판을 열어 해당 분야 전문가 등 참고인 의견을 청취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대법원의 변론 재판은 변호사 등 소송관계인의 변론보다는 미국의 경우처럼 해당사건 전문가를 '법정의 친구(amicus curiae:friend of the court)' 자격으로 출석시켜 의견을 듣는 청문회 방식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대법원은 그러나 연간 2만5천건이 넘는 소송사건을 처리하고 있는 현 실정 하에서는 변론재판을 열 수 있는 사건 수는 크게 제한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상고허가제=항소심 재판이 끝난 사건의 원고 또는 피고가 상고를 희망할 때 대법원이 원심 판결 기록과 상고 이유서를 토대로 상고의 허가 여부를 사전에 결정하는 제도. 81년 제정됐었다.

문병주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