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사오정]사진기자 A의 반성문:자료검토 삼매경 안철수 대표...셔터소리에 놀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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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국민의당 제2 창당위원회 최고운영위원 회의장. 안철수 대표는 시종일관 자료 검토에 여념이 없어 보였다. 회의 시작 전 좌우에 앉은 조배숙 의원, 김태일 위원장과 잠깐 이야기를 나눈 뒤 모두발언 전까지 자료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회의가 시작되고, 김 위원장에 이어 오승용 위원장 모두발언 때까지도 안 대표는 자료만 보고 있었다. 사진기자인 A는 안 대표가 고개를 들기만을 기다리며 카메라 파인더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3㎏이나 되는 카메라를 들고 몇 분 동안 꼼짝하지 않고 기다리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셔터찬스를 노릴 때 사진기자들은 보통 숨을 참는다. 안 대표가 모두발언을 시작했다. 왼쪽에서 찍기 시작했다. 시선이 정면을 향할 때를 기다려 '드륵', '드르륵', 가운데로 옮겨 정면에서 다시 '드륵', '드륵', '드르륵'. 오른쪽으로 이동하는 도중에 안 대표 모두발언이 끝나 버렸다.
 A의 기다림은 다시 시작됐다. 하지만 모두발언을 마친 안 대표는 다른 참석자가 발언하는 동안 다시 자료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A는 계속해서 기다렸다. 기다리는 시간은 유난히 길게 느껴진다. 기다리다 지친 A가 급기야 꾀를 냈다. 안 대표를 향해 카메라를 고정한 A는 셔터를 누른 검지 손가락에서 힘을 빼지 않았다. 연속촬영을 시작한 것이다.

 "드르르르르르르르...륵" 익숙하지만, 너무 길게 이어져 오히려 낯선 높낮이 없는 기계음이 회의장을 퍼져 나갔다. 그러기를 10여초. 셔터 소리가 멈추지 않자 회의장의 모든 사람이 이를 알아차렸다. A를 쏘아 보았다. 하지만 파인더 너머 안 대표에게 눈을 고정한 A만 몰랐다. 아니 모두의 시선이 자신을 향하고 있음을 뒤통수로 느꼈지만 차마 확인하지는 못했다. 100여 커트가 찍힐 때쯤 드디어 안 대표가 고개를 들어 소리나는 쪽을 향해 A에게 시선을 보냈다. 그 순간 A는 카메라를 내렸다. '의욕이 지나쳤구나...'
본의 아니게 회의를 방해하고 말았다. A의 와이셔츠에 땀이 배어나오고 있었다. 수근거리는 소리 사이로 A는 시선을 정면으로 고정한 채 서둘러 회의장을 빠져나왔다.

박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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