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대통령의 '미국식 대통령제' 3色 반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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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노무현(盧武鉉)대통령의 '미국식 순수 대통령제 운영'발언으로 정치권이 시끄럽다.

대통령의 권력 운영 방식의 변화를 가져올 수도 있는 언급이어서 한나라당이나 민주당 모두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한나라당은 '대통령의 말바꾸기' '공약 뒤집기'라고 공격했다. 이강두(李康斗)정책위의장은 "대통령에 당선된 뒤 국민을 상대로 (이원집정부제식 운용을)발표해놓고 아무 납득할 만한 이유없이 말을 뒤집었다"고 비난했다. 盧대통령이 올 초 '총선 전엔 순수 대통령제, 총선 후 분권형 대통령제 운영'을 약속하고 이를 번복했다는 것이다.

박진(朴振)대변인은 "미국식이든, 프랑스식이든 대통령제가 잘못돼 정부 출범 6개월 만에 나라가 어려운 지경에 빠진 게 아니다"면서 "국정 운영 실패를 제도 탓으로 돌리지 마라"고 반박했다.

내년 총선에서 과반의석 확보 전망이 불투명해지자 盧대통령이 '다수당에 총리 지명권을 주겠다'고 한 약속에서 슬그머니 발을 빼려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왔다.

신당 논의로 대치하고 있는 민주당 신.구주류는 계파별로 색다른 해석을 내놨다.

신주류의 장영달(張永達)의원은 "대통령중심제의 대통령을 뽑은 것이지 이원집정부제하의 대통령을 뽑은 게 아니다"면서 "헌법을 무시한 주장은 곤란하다"고 한나라당의 말바꾸기 주장에 역공을 폈다.

신주류 쪽은 盧대통령의 언급을 신당 논의와 연결지으려 했다. "신당 논의가 지지부진한 데 실망한 盧대통령이 당에 던지는 경고 메시지" 혹은 "집권당이 흔들리고 야당으로부터 대통령 퇴진이니 탄핵이니 하는 얘기를 듣게 되자 불쾌한 심기를 드러낸 것"이란 얘기가 나왔다.

盧대통령이 '당정 분리'를 강조한 데 대해선 해석이 엇갈렸다. 장영달 의원은 "신당 추진에 휩쓸리지 않고 정치 중립을 지키겠다는 의지를 재천명한 것"이라고 평가했으나, 김경재(金景梓)의원은 "집권당을 확실히 챙기는 게 책임정치의 요체"라고 지적했다.

일각에선 "盧대통령이 민주 당적을 버리기 위해 사전에 포석을 깔아두려는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왔다. 주로 구주류 쪽에서다. 한 의원은 "盧대통령이 당정 분리 원칙을 앞세워 민주당을 탈당함으로써 결과적으로 개혁신당에 힘을 실어주려 한다는 설이 파다하다"고 말했다.

중도파 강운태(姜雲太)의원은 盧대통령이 '여야 의원들과 개별 접촉하고 대화하겠다'고 말한 것과 관련, "나를 포함해 여러 의원이 대통령과 면담을 요청했지만 만났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없다"면서 "최소한 지난 6개월간 보여온 행보와는 차이가 있는 얘기"라고 꼬집었다.

이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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