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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자본을 위한 변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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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뉴브리지캐피털이 제일은행 주식을 팔아 11억 달러를 벌었지만 말레이시아의 세법을 적용받기 때문에 한국에서는 한 푼의 세금도 낼 필요가 없다는 사실이 화제가 되고 있다. 한국인들은 부실 기업에 투자하는 '벌처펀드'인 뉴브리지가 1998년 한국의 경제 위기 당시 헐값에 자산을 사들였다가 한국이 재기한 뒤 이를 비싸게 팔아 큰 이익을 남겼다고 분노한다.

하지만 뉴브리지에도 할 말이 있다. 98년 당시 제일은행은 한국에서 가장 상태가 나쁜 은행이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제일은행을 청산할 생각까지 했다. 제일은행을 외국 투자자에 파는 것 외에는 대안이 없었지만 엄청난 위험 부담을 안고 선뜻 사겠다는 외국 투자자를 찾는 게 쉽지 않았다. 한국 경제가 빨리 회복할 수 있을지 불투명했고 일부 애널리스트는 한국도 일본처럼 장기 경기후퇴 또는 침체에 접어들 것이라고 내다봤기 때문이다. 제일은행은 회생은커녕 생존 자체도 의문시되는 상황이었다.

뉴브리지는 이런 위험을 감수했고, 6년 뒤 멋진 성과를 거뒀다. 제일은행 매수 6년 만에 뉴브리지는 1억 주를 주당 1만7000원씩에 영국계 스탠다드차타드은행에 팔았다. 한국 정부도 제일은행 주식을 그 은행에 팔아 약 12억 달러를 벌었다. 결국 뉴브리지는 쓸모없는 자산을 사들인 뒤 가치를 엄청나게 높여 이익을 낸 것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뉴브리지는 한국 정부의 도움을 받았다.

몇몇 한국 애널리스트는 뉴브리지가 은행의 미래를 위해 장기적인 투자를 하지 않고 단기 수익을 내는 데 그쳤다고 비난한다. 예를 들어 뉴브리지가 제일은행에 선진 금융기법을 도입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사실 뉴브리지가 그럴 만한 능력이 있었는지 의문이다. 그러나 뉴브리지는 제일은행을 살려냄으로써 선진기법을 가진 스탠다드차타드은행에 제일은행을 매각할 수 있었다.

뉴브리지는 개인대출을 늘리고 기업대출은 줄였다는 비난도 받았다. 그러나 98년 당시 한국 은행들의 문제는 기업대출 비율이 지나치게 높았다는 점이었고 이는 외환위기의 한 원인이기도 했다. 반면 개인대출 시스템은 거의 발전이 없었다. 2년 전 LG카드 사태처럼 개인대출 시장에도 문제는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개인 대출이 발전해야 한국 경제에 득이 된다.

따라서 뉴브리지의 성과가 최상은 아니더라도 처음 이 회사가 제일은행을 사들일 당시 애널리스트들이 기대한 것보다 훨씬 좋은 것은 틀림없다. 뉴브리지가 거둔 수익이 너무 많을지 모르지만 이는 분명 능력에 따른 결과다.

미국에서도 80년대 후반 엄청난 규모의 외국인 직접투자가 밀려들 무렵 비슷한 논란이 있었다. 당시 많은 미국인이 외국자본을 규제하자고 했다. 다행히 미국은 그 길을 택하지 않았다. 현재 미국 내 외국인 직접투자액은 1조4000억 달러가 넘고 외국인들은 미국 경제에 활력을 주고 있다. 한국에서도 외국인 투자가 이런 이점을 가져올 것이라고 본다.

예민한 한국인들은 외국 자본들이 장기 투자보다 단기적인 속성을 가졌다고 걱정한다. 이 점에 있어 한국은 분명 실수한 게 있다. 96년 한국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하면서 먼저 문을 연 분야가 단기자본이었다. 2년 뒤에야 장기 투자 자본에도 문호를 열었고 이후 많은 장기 투자 자본이 들어왔다.

제일은행이 스탠다드차타드은행에 넘어간 것은 단기 투자 자본이 장기 투자 자본으로 바뀌었다는 의미다. 이는 앞으로 한국 경제에 상당한 도움을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되면 뉴브리지가 지금보다 훨씬 좋은 인상으로 한국인들에게 기억될 수 있을 것이다.

에드워드 그레이엄 미국 국제경제연구소(IIE) 연구원

정리=박수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