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위 “저출산 정책 추진할 때 성 평등 관점 고려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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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인권위원회가 행정안전부 장관과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저출산 정책을 추진할 때 성 평등 관점을 고려하라는 의견을 표명했다. 인권위는 29일 “출산 관련 정책을 수립·시행하는 경우 성 평등에 미칠 영향을 분석·평가해 정책이 성 평등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이같이 밝혔다.

인권위는 성 평등 관점이 결여된 대표적인 사례로 지난해 12월 행정자치부(현 행정안전부)가 연 ‘대한민국 출산지도’ 사이트를 언급했다. 당시 행자부는 출산지도를 통해 지역별 가임 여성의 수와 그 순위를 보여주는 통계를 공개했다.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지자체별 경쟁을 유도한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사이트가 공개되자마자 ‘여성을 아이 낳는 도구로 보느냐’는 비판 여론이 일었고, 사이트는 곧 폐쇄됐다.

인권위는 “행정자치부의 출산지도 사업이 여성들에게 부정적 파급효과를 미치고 정부의 중요 정책에 대한 불신을 초래했다. 정책 추진 과정에서 성 인지적 관점이 부족했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의 출산율이 저조한 이유는 출산 관련 정보 제공이 미흡해서가 아니라, 양육 책임을 여성에게 전담시키는 등 여성이 안심하고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며 “저출산의 원인과 대책에 대한 정부 정책의 패러다임 전환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지난 2월에는 보건사회연구원의 한 연구원이 저출산 문제의 원인을 ‘여성의 고스펙’ 때문이라고 발표해 파문을 일으킨 바 있다. 이에 인권위는 지난 3월 유엔 인권이사회에 제출한 국가별 인권상황 정기 검토보고서에서 “저출산 문제를 개인이나 여성 탓으로 돌리는 한국 사회의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세계경제포럼(WEF)이 2016년에 발표한 성별격차지수(GGI)에 따르면 한국의 성 평등 수준은 144개국 중 116위로 최하위권이다.

인권위 관계자는 “과거 행정자치부의 출산지도와 같은 문제가 재발하지 않으려면 저출산 기본정책을 담당하는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의 위원 구성에서도 성별 균형을 맞추는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준호 기자 ha.junho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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