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어드는 R&D 비중…10년후 이끌 산업이 사라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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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10대 기업의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R&D)비 비중이 올해 들어 대부분 줄어든 것으로 확인됐다. 10년 후 한국을 이끌 신산업 개발에 빨간불이 켜졌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10대기업 상반기 매출 대비 R&D 비율 분석해보니 #삼성전자·LG전자·포스코 등 전년에 비해 줄어들어 #일본 기업들은 40%가 사상 최대 R&D비용 지출 #"5년, 10년 뒤 제2 반도체 등장 기대하기 어려워"

중앙일보가 매출액 기준 상위 10대 기업의 상반기 사업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삼성전자·LG전자·포스코·기아차·GS칼텍스 등 5개사의 연구·개발 비중이 감소했다. 현대차·현대중공업은 전년 동기와 같았다. R&D 비중이 늘어난 곳은 SK이노베이션·현대모비스·LG디스플레이 3곳에 그쳤다. 그마저도 금액 증가는 미미했다.

개별 기업별로는 삼성전자가 국내 기업 중 가장 많은 7조9362억원의 R&D 비용을 집행했다. 하지만 삼성전자의 매출액 대비 R&D 비중은 7.1%로 전년 동기(7.5%)보다 0.4%포인트 줄었다. 이 비중은 2015년 7.4%, 2016년 7.3%로 꾸준히 하락하고 있다.

주목할 부분은 R&D 투입한 비용이 얼마나 많은 성과를 냈는지를 나타내는 ‘개발비 자산화’ 지표가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는 점이다. 개발비 자산화는 산업재산권처럼 제품 양산을 위한 원천기술을 확보했다는 의미여서 향후 성장 잠재력을 가늠하는 지표로 활용된다.
법무법인 테크앤로의 구태언 변호사는 "개발비 자산화 지표가 나빠졌다는 것은 돈은 들여도 결과가 신통치 않다는 걸 의미한다"고 말했다. 삼성전자의 올해 상반기 연구개발비 자산화 비중은 2.5%로, 지난해 동기 5.9%에 비해 절반 이상 떨어졌다. 현대차·포스코 등의 이 비중도 감소세다.

기업의 R&D 투입비중이 줄어드는데 이를 독려해야 할 정부 정책은 거꾸로 가고 있다. 정부가 지난 2일 내놓은 내년 시행 세제개편안에 따르면 기업 부설 연구소 등이 비용의 일부를 깎아주던 R&D 기본 공제율을 1~3%에서 1%포인트 낮췄다. 매출 100조원 가운데 7%를 R&D에 투입하는 기업에 개편안을 적용하면 세액공제 액수가 6700억원에서 6200억원으로 500억원 줄어든다.

우리나라와 달리 경쟁국들은 뛰고 있다. 현대차와 기아차가 합쳐서 지난해 4조원가량을 연구개발에 쓴 데 비해 도요타는 같은 기간 1조375억 엔(11조원)을 투입했다. 이 격차는 더 벌어질 전망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이 최근 '일본 주요기업 268곳의 2017년 R&D 예산'을 분석한 보도에 따르면 일본 기업의 40%가 역대 최대 규모의 R&D 예산을 집행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도요타가 R&D 비용을 전년보다 1.2% 늘린 1조5000억엔(15조원), 혼다는 9.4% 늘린 7500억엔(7조5000억원), 닛산은 7% 늘린 5250억엔(5조2500억원)을 투입한다. 반면 현대차와 기아차의 올 상반기 R&D 비용은 1조7000억원에 그쳤다.

이태규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정책의 방향이 시장에 주는 신호가 중요한데, 일자리를 강조하는 새 정부가 R&D 인센티브를 줄이려는 것으로 비쳐줘선 곤란하다"며 "제2 반도체 등 새로운 미래 먹거리를 책임질 산업기반을 마련하려면 획기적인 R&D 진작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태희·김유경 기자 adonis55@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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