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시평] 경제정책 시야를 넓혀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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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참여정부 6개월에 대한 평가에서 경제분야가 가장 인색한 점수를 받고 있다. 경기가 바닥인 상황에서 정부를 보는 국민의 시선이 고울 리 없다.

물론 정부로서도 어쩔 수 없는 경기순환적인 측면이 있고 또 현재 겪고 있는 어려움 중에는 해외 시장이나 이전 정권에서 기인된 것들이 적지 않다.

이런 문제는 시간이 흐르며 시장의 힘에 의해 절로 풀릴 수도 있지만 방치하면 상황이 악화될 수 있다. 문제를 다 해결할 수는 없어도 정부가 할 일은 존재하는 것이다.

경기회복을 위한 대책이 효과적이었는지, 취약한 경제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는지, 장기적인 성장동력의 확보와 사회안정을 위한 대안은 무엇인지 등 정부의 역할에 대한 질문은 대부분 예측 가능한 것들이다.

그러나 이러한 다양한 차원의 정책을 입안하고 집행하는 일은 말처럼 쉽지 않다. 무엇보다 정책의 시계와 초점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예컨대 단기적인 수요 진작을 위해서는 소비가 바람직하지만 장기적인 성장 잠재력을 키우려면 저축이 늘어야 한다. 장기적인 차원에서는 분배와 성장의 조화를 논하기 쉽지만 단기적인 정책 선택에 있어서는 양자 간의 충돌이 불가피한 경우가 많다.

특정 시점에서 어떤 정책이 바람직한가를 결정하려면 정부 내에 넓은 안목과 시계의 정책능력이 축적돼야 한다. 일이 떨어져야 허겁지겁 대책을 생각하는 정부와, 정권이 바뀌어도 정책의 일관성이 유지되는 정부 간에는 차이가 크다.

전자의 경우는 상황에 끌려다니다 쇠락의 길을 걷기 쉽지만 후자의 경우에는 당장의 외생적 여건이 어렵더라도 소신있는 정책을 펴나갈 것이다. 예컨대 같은 분배 정책이라도 어떤 안목에서 누가 어떤 방식으로 행하느냐에 따라 시장의 반응과 정책효과가 달라질 수 있다.

참여정부가 경제분야에서 고전하고 있는 것도 결국은 대립적인 선택에 부딪쳤을 때 적정한 정책을 선택하고 이를 국민에게 설득할 수 있는 힘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일까. 과거 국정 참여 경험이 있는 원로들의 생각은 대체로 정책조율을 위한 제도적 장치의 미비와 경제팀의 인적 구성에 대한 의문으로 모아지는 것 같다.

그러나 현 정부의 핵심 관료들이 과거에 비해 능력이 떨어진다고 보기 어렵다. 학자 출신들의 경험 부족을 거론하지만 평생 권력 주변을 맴돌다 간택된 과거의 인물들이 뭐가 특별히 더 나았는지 모르겠다.

정책 조정기능이 미흡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것이 경제수석 중심의 청와대 체제를 개편해 분권화시킨 제도 변화 탓이라고 보는 다수의 시각에 동조하기 어렵다. 일하기에 따라 지금의 체제 하에서도 얼마든지 옛날과 같은 조정기능을 수행할 여지가 있다.

문제의 핵심을 보려면 과거와 큰 차이가 없는 사람과 조직을 놓고 왈가왈부할 것이 아니라 좀 큰 틀에서 우리 경제의 환경 변화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수출시장에만 매달리던 개발 초기와 달리 경제규모가 커진 지금은 내수가 성장과 안정에 미치는 영향이 중요하다. 그런데 금융변수의 국제 연동과 자본이동이 심화하면서 전통적인 재정 금융정책의 실효성은 떨어지고 있다.

경쟁력이 높은 외국 상품의 수입을 막던 시절은 가고 지금은 외국 기업과 자본을 통해 국내 산업의 경쟁력을 높여야 할 때다. 또한 정치 민주화의 진전으로 공평한 분배에 대한 사회적 욕구가 분출되며 복지정책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이처럼 과거에 비해 정책목표는 늘어나고 있는데 정책수단의 차원에서 본 정부의 능력은 크게 진전된 것이 없다. 제도나 사람을 적당히 바꾼다고 풀릴 문제가 아니다.

경제의 어려움을 모두 현 정부 탓으로 돌리기 힘든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정권 차원이 아니라 정치권과 행정부를 망라한 정부의 총체적인 힘이 부족한 현 상황에서 의욕이 능력을 넘어서면 시행착오를 부르기 쉽다.

이는 참여정부가 주목해야 할 대목이다. 한편으로 실현 가능한 정책목표를 설정하고 다른 한편으로 정책능력을 키우는 체계적인 모습을 보인다면 최소한 정부의 신뢰는 추락하지 않을 것이다. 멀리 보는 지혜가 필요한 때다.

전주성 이화여대 교수.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