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 북 ICBM 자국에 유리하다 판단 … 대북 원유 중단 안 할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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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휴 화이트 호주국립대 교수 인터뷰

휴 화이트 교수는 북한의 핵 문제를 해결하는 길은 남북 통일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말했다.

휴 화이트 교수는 북한의 핵 문제를 해결하는 길은 남북 통일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말했다.

북한이 28일 밤, 그리고 앞서 지난 4일 발사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 14형은 한반도는 물론, 동북아시아 안보 구도를 바꾸는 ‘게임 체인저’로 불린다. 21세기 아시아·태평양 지역 전략 전문가인 휴 화이트 호주국립대 교수는 “북한의 ICBM 완성은 역내 미국의 동맹 구도 와해와 미국의 아시아 철수, 중국의 경제·정치·전략적 지배로 이어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북한 핵·미사일 완성 단계로 진입 #미국 핵 억지력에 대한 신뢰 훼손 #역내 미국 영향력 약화 바라는 중국 #북 붕괴시킬 정도 강력 제재 피할 듯 #북한이 핵보유국 됐다는 게 현실 #핵 사용 막는 길뿐인데 쉽지 않아

북한의 핵과 ICBM 체계 완성이 갖는 전략적 의미를 e메일로 들어봤다.

북한의 ICBM 체계 완성이 임박했다는 분석이다. 한반도 및 동북아 안보, 지정학적 구도에 어떤 의미를 지니나.
“직접적 영향은 없고 새로운 위협도 아니다. 역내 국가들은 이미 북한의 (노동 등) 미사일 사정권 내에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간접적 영향은 지대하다. 북한의 ICBM이 미국이 한국과 일본 등 역내 동맹국에 제공하는 안전 보장, 특히 핵 확장 억지력의 신뢰를 크게 훼손시킨다는 점에서다. 지금까지 한국과 일본은 북한이 핵 공격을 하면 미국이 북한을 공격할 것이라는, 동맹 간 신뢰에 기반한 억지력에 의존했다. 하지만 북한이 ICBM 역량을 갖추면 얘기는 달라진다. 미국이 핵 공격을 한 북한에 대응 공격할 경우 북한이 미국의 도시를 보복 공격할 수 있다는 점에서다. 미국인들도 리스크가 있는데 한국을 계속해 도와줘야 하는지 의문을 제기할 것이다. 아시아에서 미국의 전략적 위치가 약화되고, 제로섬 게임에서 볼 때 중국의 전략적 영향력 강화로 이어질 것이다.”
미국은 군사적 옵션까지 얘기하는 반면 중국은 러시아와 함께 ‘쌍중단’(북한은 도발을 중단하고 한·미는 군사훈련을 중단)을 주장하고 있다. 중국이 원유 공급 중단 등 대북제재에 나설 가능성이 있나.
“북한이 핵·미사일 프로그램을 포기할 정도의 강한 제재를 중국이 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본다. 중국은 북한 김정은 정권이 붕괴해 리스크가 발생하는 것이 중국의 이익을 침해하는 문제라 보고 있다. 여기에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 특히 ICBM 능력 구비가 아시아에서 미국의 위상을 약화시키는 결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중국의 이익에 기여한다고 여길 수 있다.”
중국이 북한의 핵·미사일 프로그램을 중국의 지정학적 이익에 도움이 된다고 본다는 건가.
“그렇다. 이미 언급했듯 중국은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 확보가 한·미 동맹과 미·일 동맹 약화로 연결된다고 보고 있고, 아시아에서 미국의 전략적 리더십의 뿌리를 흔들겠다는 중국의 장기적·전략적 열망에 기여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은 한반도 문제 해결 방안으로 ‘쌍중단’과 ‘쌍궤병행’이란 접근법을 내세우고 있다. 러시아도 마찬가지다. 쌍궤병행은 한반도 비핵화 프로세스와 북·미 평화체제 구축을 병행 추진하는 것인데 현실성이 있나.
“중국의 접근법은 실현 가능하지 않다는 걸 중국도 알 것이다. 북한이 핵·미사일을 동결할 정도의 유인책도 되지 못하고, 미국도 받아들이지 않을 방안이다. 중국에 쏟아지는 압력을 워싱턴으로 전가하기 위해, 베이징이 뭔가 해결을 추구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기 위한 외교적 방책이다.”
각국이 ‘북한의 비핵화가 목표’라고 얘기하지만, 이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받아들이자는 주장도 적지 않다. 수용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수용해야 그나마 위협을 관리할 수 있다(닥터 제프리 루이스, 미 미들베리 국제연구소)는데.
“그렇다. 현실은 북한이 이제 핵보유국이 됐다는 거다. 북한의 김정은은 절대로 핵·미사일 프로그램을 포기하지 않는다. 이 상황을 되돌리는 유일한 길은 북한에 대한 전면 전쟁이다. 그러나 북한이 핵 능력을 갖춘 이상 치러야 할 대가는 엄청나다. 따라서 우리는 북한이 핵을 사용하지 않도록, 또 사용하겠다고 협박하지 않도록 억지하는 방향으로 가야 하는데 그 길이 쉽진 않다. 특히 북한의 ICBM 기술이 완성에 임박한 상황에선 더욱 그렇다. 한·일이 북한의 핵 공격을 억지하고 공격 위협에 맞서려면 독자적 핵 억지력을 구축해야 할 수도 있다. 모두가 달갑지 않은 결론이지만 우리가 맞닥뜨린 엄중한 현실을 직시해야만 한다.”
한국 정부의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에 대한 입장이 바뀌었다. 그래도 중국의 압박은 계속되고 있다. 앞으로의 전망은.
“중국은 사드를 실제적 이슈가 아닌 상징적 이슈로 삼고 있다. 미국이 한국에 대해 제공하는 많은 군사적 지원에 대해 중국이 거부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시위성 성격이 짙다. 이런 점에서 중국의 시도는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본다. 문재인 대통령이 일반 환경영향평가 실시 등으로 주춤하는 모습을 보인 건 중국의 압력에 부응하는 조치로 비칠 수 있다. 중국의 압력이 성공하느냐 여부는 한반도에서 미·중 간 힘의 균형의 핵심 시험대다.”
비핵화 협상이 진전될 경우 한반도의 정전 상태가 종전 상태로, 또 북·미 평화협정까지 체결될 경우 주한미군의 한반도 주둔 문제가 핵심 이슈가 될 것 같다.
“남북 통일은 북한 정권의 붕괴만이 답이다. 왜냐하면 북한의 절대권력자 김정은은 김씨 왕조의 현재 위상을 그대로 유지하지 않을 수도 있는 통일을 원하지 않는다. 한국 또한 김씨 왕조가 유지되는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지 않나. 물론 북한에서 정권 붕괴가 일어나지 않으리란 법은 없다. 한국이 통일을 추진할 때 중국의 협조는 필수적인데 중국의 조건은 통일 후 한반도에 미군이 없다는 전제일 것이다.”
북한의 비핵화가 협상을 통해선 힘들다고 했는데, 한국의 안보를 위해 북한 정권 교체를 통해서라도 북핵 폐기를 하는 게 맞나. 아니면 핵을 가진 북한과 공존하는 방식으로 대안을 찾아야 하는가.
“언급했듯이, 통일은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신뢰할 만한 유일한 길이고, 통일을 위한 유일한 길은 평양 정권의 붕괴다. 그러나 나는 한국 정부든 다른 국가 정부든 이를 앞당기기 위해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는 걸 안다. 인내심을 가져야 할밖에.”

◆휴 화이트

호주국립대(ANU) 교수. 21세기 아·태 지역 안보 이슈, 글로벌 전략 문제 전문가다. 호주 멜버른대와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철학을 전공하고 호주 정보기관인 국가평가국(ONA)의 전략 분석가로 일했다. 호주 일간지 시드니모닝헤럴드 기자, 국방부 전략담당 차관, 호주전략정책연구소(ASAP) 소장 등을 지냈다. 미국의 미래 관계와 아시아 세력 판도를 분석한 『중국을 선택하라』(China Choice) 등의 저서가 있다.

글·사진=김수정 외교안보 선임기자 kim.su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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