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얏나무 밑서 갓끈 매서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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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미래의 청사진은 많은 꿈을 담게 마련이다. 8일 건설부가 발표한 2001년까지의 「지역경제권별 종합 개발계획」역시 갖가지 야심적인 미래설계를 담고있다.
서울만 지나치게 비대화시켜온 과거 정책을 반성하고 국토의 보다 균형있는 개발을 추진하겠다는 것이 이 계획의 취지다. 국토개발의 장기비전을 제시해야할 건설부로서는 모처럼 「한 건」(?)을 한 셈이다. 요즘의 선거전에서 저마다 도로건설이다, 공단유치다 하는 공약들이 쏟아져 나오는 판이라 시의에도 딱 들어맞는다.
그러나 계획이 담고 있는 내용과 발표배경을 따져보면 아무래도 석연찮은 감을 지울 수 없다는 것이 문제다. 우선 계획의 성격부터가 애매모호하다. 현재 2차 국토개발종합계획(82∼91년)이 진행중에 있고 그렇다고 3차 계획(91∼2001년)은 절대 아니라면서 발표내용은 3차 계획기간인 2001년까지의 청사진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4조원이나 들어간다는 경부고속전철 건설은 소요자금의 예산추정조차 총 자금수요에서 빠져있다. 관계실무자들조차 경제성문제를 놓고 부처간 이견이 맞서고 있음을 시인하고 있는 실정이다.
당초에는 중부권과 동남권계획만 발표하려던 건설부가 내년 여름에나 가야 결론이 나올 서남권계획까지 부랴부랴 보도자료를 만들어 뒤늦게 포함시키는 과정도 석연찮은 부분이다.
개혁내용의 실현성여부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장기 계획이니 되는 것도 있고 안 되는 것도 있는 게 아니냐』는 주무장관의 답변은 솔직한 고백일지는 몰라도 이 계획의 신뢰성을 절하시키고 있다.
발표시기도 마찬가지다. 국토개발연구원이 용역을 맡아 지난여름에 이미 완결된 것을 지금까지 발표시기를 늦춰왔었던 이유는 무엇인지... .
결정적인 오해의 소지는 계획의 주요골자들이 철저한 보안 속에 여당 대통령 후보의 선거유세과정에서 정책공약사항으로 쓰여졌고 선거가 막바지에 와 있는 이 시점에 발표됨으로써 정부의 입으로 특정후보의 공약을 보증하는 것 같은 인상을 주고 있다는 점이다.
자고로 오얏나무 밑에서는 갓끈을 매지 말라는 격언이 있듯이 이럴 때일수록 정부의 보다 엄격한 공정·중립성이 요청되는 때다.
애써서 만든 계획이 공연한 오해를 자초하고 있으니 안타까운 노릇이다. 이장규<경제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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