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대통령 사돈 음주운전 사고 직후 청와대 민정수석실 관할 경찰서에 전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3면

노무현 대통령 아들 건호씨의 장인 배병렬(60)씨가 음주 교통사고를 냈으나 담당 경찰관이 이를 눈감아 준 것으로 확인됐다. 또 사고 직후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실 직원이 관할 경찰서 간부에게 사고 내용을 확인하는 전화를 건 것으로 드러났다. 이 같은 사실은 경찰청 감찰조사에서 밝혀졌다.

◆ 사건 전말=박종환 경찰청 감사관은 15일 국회 행자위 전체회의에서 "2003년 4월 24일 경남 김해시 진례면에서 배씨가 음주운전을 하다 부산경찰청 소속 임모(42) 경사의 승용차와 충돌 사고를 냈다"며 "그러나 당시 파출소의 두 직원이 음주 측정을 하지 않고 단순사고로 처리한 게 감찰 조사 결과 파악됐다"고 보고했다. 배씨는 최근 경찰 조사에서 "당시 한 초등학교 교장과 일식집에서 저녁 식사를 하며 소주 두 잔을 마신 뒤 운전을 했다"고 시인했다고 한다.

특히 박 감사관은 "사고 직후 배씨의 전화를 받은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대통령 친인척 담당 김모 경정이 김해경찰서 서모 정보과장에게 사건 경위를 묻는 전화를 해 서 과장이 파출소로 왔으나 이미 당사자들이 떠난 상태였다"고 말했다. 당시 경남경찰청장이었던 이택순 경찰청장은 사고난 지 한 달 뒤께 김해경찰서장으로부터 이 사건에 대해 "단순 교통사고가 있었다"는 보고만 받았다고 박 감사관은 주장했다.

◆ 남는 의문점=청와대는 이날 "최근 경찰 조사 때까지 배씨의 음주 사실을 몰랐다"고 밝혔다. 하지만 사고 직후 민정수석실 직원과 통화를 한 배씨가 음주 사실을 언급하지 않았다는 청와대 측 설명은 납득하기 어렵다. 도움을 청하기 위해 전화를 하면서 정작 도움받을 내용을 말하지 않았을 리 없기 때문이다. 피해자인 임씨는 "배씨에 대해 음주측정을 하려던 파출소 직원들이 어딘가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고 태도가 변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경찰은 관할파출소장이 배씨를 대신해 임씨와 합의서를 작성했다고 밝혔다. 경찰이 조직적으로 개입했다는 의혹을 살 만한 대목이다.

◆ "대통령 사과 요구"=행자위의 여야 의원들은 철저한 진상조사를 촉구했다. 한나라당 유기준 의원은 "늦게나마 경찰이 양심고백을 한 점은 다행"이라며 "그러나 당시 경찰청 모 국장이 사고 직후 배씨의 전화를 받고 해당 파출소장에게 경비전화를 걸어 배씨를 귀가조치하라고 지시하는 등 의혹이 많다"고 주장했다. 같은 당 서병수 의원은 미국의 워터게이트 사건을 예로 들며 "사소한 일들이 정권에 치명적인 도덕적 손상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열린우리당 유인태 의원도 "감추려고 하면 더 큰 덤터기를 쓸 수 있으니 한 점 의혹 없이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이택순 경찰청장은 "미흡한 점이 있으면 자체적으로 (조사를)더 할 수 있다"고 답변했다.

야당은 노 대통령의 대국민사과도 요구했다. 한나라당 이계진 대변인은 "권력에 의한 은폐가 있었음이 불을 보듯 뻔한 만큼 노 대통령은 국민 앞에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의혹을 처음 제기한 국민중심당은 이규진 대변인이 논평을 내고 "청와대 관계자를 비롯해 사건을 은폐하고 조작하는 데 관여한 모든 관계자들을 엄벌해야 한다"고 했다.

이상언 기자

*** 바로잡습니다

2월 16일자 3면 '노 대통령 사돈 음주운전 사고 직후' 기사에서 사고 발생 장소가 '진해시'로 돼 있으나 '김해시'이기에 바로잡습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