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사법부가 확인한 사학 관선이사의 월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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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서울고법이 분규 사립대에 파견된 임시이사들이 정식이사를 일방적으로 선임하는 것은 무효라고 판결했다. 임시이사들의 월권 행위에 쐐기를 박고 사학의 자율성을 확인한 것으로 평가된다. 현행법은 교육인적자원부 장관과 시.도 교육감이 문제가 발생한 사학법인에 대해 이사 승인을 취소하고 소위 '관선이사'로 불리는 임시이사를 파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이 관선이사 제도는 많은 문제점이 지적돼 왔다. 관선이사 제도가 본래의 목적과는 달리 정권이나 정부의 코드에 맞는 인사들이 임시이사를 맡아 학교를 주무르고, 사실상 '접수'하는 일이 비일비재했기 때문이다.

서울고법이 "임시이사는 임시 위기 관리자이므로 권한이 제한적인데, 정이사와 다름없는 권한을 행사하면 대학 설립의 목적과 취지를 변질시키고 자주성을 본질적으로 침해한다"고 판시한 것은 문제의 본질을 정확히 본 것이다. 관선이사란 명분으로 사학을 엉뚱한 세력이 차고앉는 사례가 많았기 때문이다. 이런 폐해 때문에 2년 전에는 관선이사를 파견할 수 있는 근거인 사학법에 대해 헌법 소원도 제기됐다.

이런 폐해가 있는데도 개정 사학법은 오히려 관선이사의 권한을 더 확대시켰다. 임시이사 파견 요건을 '학교법인의 정상적 운영이 어렵다고 판단될 때'로 한층 확대했다. 정부가 자의적으로 정상 운영이 어렵다는 판단만 하면 관선이사를 학교에 넣고 사학 운영권을 뺏을 수 있게 만든 것이다. 특히 개정법은 현재 '임기 2년에 1회 연임 가능'으로 돼 있는 임시이사 임기에 대해서도 그 기한을 없애 임시이사가 영원히 학교를 운영할 수 있게 했다. 그렇기 때문에 개정 사학법이 '사학 탈취법'이라고 비난을 받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개정 사학법의 재개정 논란 속에 나온 서울고법의 이번 판결은 의미 있다. 관선이사가 사학재단을 마음대로 좌지우지 못하도록 못 박은 것으로 보아야 한다. 이번 판결로 보더라도 정부와 여당은 개정 사학법의 임시이사 파견 제도를 근본적으로 고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