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업체 장기 소액 연체도 탕감해준다"…80만명 대상 유례없는 '빚 탕감' 정책 나온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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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구 금융위원장이 26일 서울 광화문 정부청사에서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사진 금융위원회]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26일 서울 광화문 정부청사에서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사진 금융위원회]

정부가 예산을 투입해 민간 대부업체의 장기 소액 연체채권을 사들여 소각해주기로 했다. 국민행복기금이 이미 보유한 채권까지 포함하면 ‘빚 탕감’ 대상은 80만명 이상이다.

최종구 금융위원장, '포용적 금융정책' 방향 밝혀 #예산 투입해서 민간 연체채권 사들여 소각 #"도덕적 해이 막기 위해 상환능력 심사할 것" #법정 최고금리는 내년 1월 24%로 내리기로

최종구 신임 금융위원장은 26일 취임 뒤 첫 기자간담회에서 이러한 내용이 포함된 ‘포용적 금융’ 정책 방향을 밝혔다. 장기간 추심으로 고통 받는 장기연체자들이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할 수 있도록 재기를 지원한다는 취지다.

최 위원장은 “국민행복기금·금융공공기관·대부업체 등이 보유한 장기소액 연체채권에 대해 상환능력 심사를 거쳐, 상환이 어려운 계층은 과감하게 최대한 채무정리를 돕겠다”고 밝혔다. 구체적인 채무정리 방안은 8월 초에 발표한다.

이는 문재인 대통령이 공약으로 밝힌 국민행복기금 보유 장기 연체채권(10년 이상, 1000만원 이하) 소각 방안을 민간으로까지 확대한 것이다. 민간이 보유한 연체채권을 예산을 투입해 정부가 사들인 뒤 소각해서 빚을 사라지게 해준다는 계획이다. 최 위원장은 “여러번 매각돼 돌아다니는 연체채권을 얼마만큼 매입할지 그 규모는 협의 중”이라며 “예산 확보에 따라 대상은 달라지겠지만 최소한 민간 부문에서 40만명 이상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기존에 국민행복기금 보유 채권 중 소각 대상자(1000만원 이하, 10년 이상 연체채권 보유자)는 40만명이 넘는다. 따라서 민간 부문까지 합친 전체 채권 소각 대상 연체자 수는 80만명 이상이란 뜻이다.

최 위원장은 빚 탕감으로 인한 도덕적 해이 가능성에 대해 “누가 상환능력이 있는지 없는지를 젓가락으로 생선살 발라내듯 깨끗하게 구분하기 어려운 건 사실”이라면서도 “그 부분을 유의해서 여러 자료를 통해 상환능력이 있는지를 최대한 철저히 심사하겠다”고 밝혔다.

법정 최고금리 인하 계획도 구체화해서 발표했다. 그는 “시행령을 통해 대부업법의 법정 최고금리를 24%로 내려서 내년 1월부터 시행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법무부와 협의를 통해 사채업체 적용되는 이자제한법의 최고금리(현재 25%)도 내년 1월에 동시에 24%로 내린다는 계획이다.

‘빚 권하는 폐습’을 없애기 위해 대부업에 대한 규제 강화도 예고했다. 그는 “현재는 밤 10시 이전에 TV에서 대부업 광고를 하지 못하게 규제하는데, 젊은 사람들은 이보다 더 늦게 잔다”며 “시간규제를 다시 한번 보겠다”고 말했다. 아울러 “상환능력이 확실치 않은 젊은 사람에게 자꾸 빚을 권하고 갚지 못하면 더 고금리 대출을 받게 되는 문제의 배경에 대출 모집활동이 있다”면서 “대출모집에 대한 규제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말했다.

최 위원장은 이날 간담회에서 가계대출 위주의 손쉬운 영업에 안주하는 은행의 행태에 대한 지적에 시간을 상당부분 할애했다. 그가 취임사에서 밝힌 ‘생산적 금융’으로 가기 위해서는 이러한 자금 쏠림 현상부터 개선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는 “1990년대엔 국민은행은 가계자금 대출 위주이고 다른 시중은행은 기업대출 위주로 영업했는데, 지금은 은행 간 구분이 없이 모두 가계대출 위주”라며 “은행이 지나치게 주택담보대출에 집중하고 ‘전당포식 영업행태’라는 비판과 지적에 일리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이런 부분에 대해 “이렇게 된 것은 감독기능의 미흡한 점이 있지 않았나 금융당국자도 반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따라서 은행이 주택담보대출 영업에 치중하지 않고 생산적 금융의 방향으로 영업을 다변화하도록 규제를 바꿔나가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최 위원장은 “현재 금융시스템을 그대로 두면 과도한 가계부채를 양산할 수밖에 없다”며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의 위험가중치를 바꾸는 방안 등을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가계대출의 위험가중치가 올라가면 은행은 BIS 비율을 유지하기 위해 자본을 확충하거나 가계대출 자산을 줄여야만 한다. 따라서 이러한 방식으로 은행의 가계대출 영업을 자제시킨다는 방안을 논의하겠다는 의미다. 현재 국내 금융당국은 은행에 가계대출 위험가중치를 최소 15% 이상으로 잡도록 지도하고 있다. 최 위원장은 이날 질의응답에서 “한국은 (위험가중치가) 15%인데 호주는 25%”라고 언급했다.

한애란 기자 aeyan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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