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문무일, 검찰의 정치적 중립에 직을 걸어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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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검찰은 적폐 청산의 대상인 동시에 적폐 척결을 수행하는 집행자라는 이율배반적 상황에 놓여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무소불위 권력’의 검찰을 개혁 대상 1호로 지목하면서 힘을 빼겠다고 강조해왔다. 그러면서도 검찰의 독립성 훼손 논란에 불구하고 청와대 주도의 ‘반부패협의회’에 검찰총장을 참석하게 하는 등 사정 정국에 검찰을 전진 배치했다. 검찰은 하기에 따라 ‘정치 검찰’의 오명을 벗어 던질 수도, 살아 있는 권력과 타협하며 기득권을 유지할 수도 있는 위험한 곡예를 요구받는 처지다. 새 검찰총장에게 거는 정치적 중립성이 그 어느 때보다 큰 이유다.

문무일 검찰총장 후보자는 어제 인사청문회에서 “정치적 중립성과 투명성을 철저히 지키겠다”고 했다. 너무도 당연한 말인데도 솔직히 미덥지 않다. 당장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의 방산비리, 박근혜 정부의 청와대 문건, 4대 강 사업에 대한 수사가 검찰을 시험에 들게 할 것이다. 이명박·박근혜 전 정부와 관련된 사건들이란 점에서 보복수사 논란을 어떻게 피해 나갈지 관심이다. 문 후보자는 검경 수사권 조정과 관련해 민생치안과 관련된 수사는 경찰에 이양하되, 수사지휘권과 거악(巨惡) 척결과 같은 사건의 직접수사권은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통제 불능의 권력’으로 불리는 검찰이 스스로 몸을 낮추라는 국민 인식과는 꽤 거리감이 있어 아쉽다. 수사권 조정과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신설 문제의 협의 과정에서 전향적으로 나서길 기대한다.

문 후보자가 총장에 임명되면 적폐 청산을 위한 사정 드라이브를 강하게 걸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청와대가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검찰이 화답하는 방식이라면 곤란하다. 새 총장은 정치적 중립성과 수사의 공정성을 지키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공개적으로 천명하고, 그 실천에 자신의 직(職)을 걸어야만 검찰을 살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