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수게임승도 '공짜'아니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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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수 게임도 '공짜'는 아니다.

22일 농구 경기가 열린 대구 시민체육관에는 보기 드문 광경이 펼쳐졌다. '우크라이나 대 우크라이나'의 경기가 열렸기 때문이다. 유니버시아드는 국제 대회인데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일까.

속사정이 있었다. 상대팀인 나이지리아는 아예 입국도 안했다. '몰수 게임'이었지만 우크라이나는 경기장에 나와야 했다. 유니폼까지 갖추고 베스트5도 지명했다. '몰수 게임이라도 코트에서 15분간 상대팀을 기다려야 한다'는 규정 때문이었다.

경기 예정 시각인 오후 1시가 되자 우크라이나 선수들은 팔짱을 낀 채 코트로 걸어 나왔다. 정확히 15분이 지나자 심판이 휘슬을 불었다. 그때서야 우크라이나는 '1승'을 올릴 수 있었다. 점수는 20-0으로 처리됐다.

우크라이나의 샤라피트디노프 페트로 감독은 "국제경기를 많이 치렀지만 몰수 게임은 처음"이라며 "1승을 주웠지만 오히려 선수들의 경기 감각이 무뎌질까봐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고심 끝에 페트로 감독은 선수들을 다섯명씩 두 팀으로 나누었다. 그리고 실전을 방불케 하는 연습경기를 가졌다. 전광판은 꺼져 있었고, 감독과 코치가 직접 심판을 봤다.

한편 경기장 밖에는 몰수 게임 소식을 미처 듣지 못했던 우크라이나 서포터스 80여명이 발을 동동 굴렀다. 이재금(36.여.김해시 어방동)씨는 "아이를 이웃에 맡기고 두시간이나 버스를 타고 왔다"며 "응원 연습을 많이 했는데 기회를 잃었다"며 아쉬워했다. 결국 운영위는 오후 3시에 열린 터키-카자흐스탄 경기에 우크라이나 서포터스를 입장시켰다.

대구=백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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