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국회파행 무릅쓴 인사강행은 협치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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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여야는 어제 하루 종일 강경하게 맞서며 네탓 공방을 벌였다. 장관 후보자 3명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는 문재인 대통령의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임명 강행에 반발한 자유한국당의 불참으로 오후에야 간신히 열리는 파행을 빚었다. 문재인 정부 출범 불과 한 달여 만이다. 대선 과정에 이어 문 대통령 취임 이후 제기된 협치 목소리는 상호 비난전에 묻혔고 여야는 등을 돌렸다.

강경화 임명 강행이 정국 분수령 #'국민협치' 주장은 경색만 키울 뿐 #여야 모두 초심으로 절충점 찾길

'협치 파괴' 등의 격한 반응을 보인 야권에선 “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까지 임명을 강행하면 지금보다 더 높은 수준의 대처가 있을 것”이란 강경 다짐이 잇따랐다. 하지만 청와대는 이날 보고서 채택을 야당에 압박하며 사실상 강 후보자에 대한 임명 강행 수순에 돌입했다. 청와대와 야당이 양보나 타협 없이 마주 달리는 꼴이다. 정국이 한층 더 경색될 건 불가피해 보인다.

이에 따라 추경 예산안 심사, 정부조직법 개정안 통과 전망은 더욱 불투명하게 됐다. 내각 구성을 완성하기까지 갈 길도 험해졌다. 현 정부조직 17개 부처 중 15개 장관 인선을 마쳤지만 후속 청문회 인사 검증은 파고가 높고 거칠어질 게 뻔하기 때문이다. 국회가 막히면 어렵고 힘들어지는 건 일단 문재인 정부다. 대부분의 개혁 공약들이 입법적 뒷받침이 필요한데, 여소야대인 데다 국회 선진화법이란 장벽까지 겹쳐 있다.

청와대와 집권당은 당장 협치를 위해 팔 걷고 나서는 수밖에 없다. 우선 빨리 조각을 마무리하고 새 정부가 각종 현안에 대응할 수 있는 체제를 갖추는 게 급선무다. 야당 주장을 경청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건 과감히 수용해야 한다. 하지만 집권당인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는 "협치 거부"라고 야당을 몰아세우고 우원식 원내대표는 "정당 협치만이 아니라 국민 협치가 필요하다"며 국정지지율만 자랑하니 갈수록 꼬여만 가는 정국이다.

물론 야당의 강경 입장이 문 대통령의 소통과 협치 여지를 좁히는 측면이 있다. 특정 후보자 문제를 다른 후보자 청문회나 정책 현안과 연계시키는 것도 박수 받을 선택은 아니다. 그러나 근본적 문제는 흠결 투성이인 공직자 후보군에 있다. 문 대통령 스스로 설정한 공직 배제 5대 원칙에 어긋나는 인사가 대부분이다. 그런 인사를 해놓고 '야당이 발목 잡는다'고 비난을 퍼부어대면 야당이 수긍하지 못하는 게 당연하다. 여권은 이제 '무결점 인재는 없다'고 항변하는데 코드 맞는 내 편에서만 찾다 보니 없는 것이지 왜 없겠는가.

문재인 정부의 성공 열쇠는 여야 협치가 어떻게 작동하느냐에 달여 있다. 문 대통령은 소통과 협치를 약속했다. 취임사에선 "야당은 국정 운영의 동반자"라며 "수시로 만나겠다"고 다짐했다. 좀 더 진정성 있는 자세로 야당을 대해야 한다. 5대 인사원칙이 비현실적 공약이었음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데 인색할 이유가 없다. 야당이 끝까지 반대하는 '문제 후보자'까지 모두 임명 강행을 고집하는 건 독선이고 오만이다. 독선과 오만은 협치에 독약이다. 여야 모두 협치의 초심으로 돌아가 한 걸음씩 물러서야 합리적 절충점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