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후 정국이 걱정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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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이렇게 유세장 안팎에서 갈등과 분열상이 첨예하게 나타나도 아마 이럭저럭 선거는 치를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 다음이다. 우리가 16년여만에 대통령 직접선거를 하는 가장 큰 의의는 그동안 깊어진 국민 사이의 대립과 이견, 그리고 한을 선거란 용광로에서 용해해 우리 정치를 그토록 괴롭혔던 정통성의 위기를 해소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이번 선거에 그러한 위기 해소를 기대할수 있을까.
유감스럽게 지금으로선 그런 물음에 그렇다고 대답할수가 없다. 선거 후의 정국이 수습· 안정되기는 커녕 오히려 불안의 증폭으로 치닫지 않을지 걱정스런 오늘이다.
선거이후 정국을 걱정스럽게 보게될 요인이 여기저기서 눈에 띄고있다.
첫째, 후보 난립에 따른 소수대통령의 출현 가능성이다. 지금의 경합상으로는 어느 누구도 압도적인 지지를 모으기는 어려워 보인다. 유효투표 3분의1 남짓의 대통령이 나올 전망이다.이런 소수 지지 대통령이 도전에 노출되리라는 것은 그야말로 필연적이다.
둘째, 위험수위를 넘고 있는 지역감정의 표출, 지역간의 경쟁심리다. 누가 대통령이 되건 특정지역의 몰표가 기반일 경우 다른 지역 주민의 소외감은 피할수 없게 되어있다. 우리가 이미 겪었던대로 그런 대통령이 전국민적 지도자로서 국민 단합의 구심점이 되기까지는 숱한 난관을 넘어야 할 것이다.
셋째, 불리한 결과에는 승복하지 않겠다는 완강한 마음가짐들이다. 나와 우리편이 당선되는 것만이 역사의 방향이고 그렇지 않은 것은모두 역사의 역류요, 부정이라는 독단이 깊이 자리잡고 있다. 혹시 어느 누가 압도적 다수로 당선된다면 또 몰라도 근소한 차이로 결말이 날 경우 결과에 승복하지 않는「정신적 대통령들」과 그 세력의 도전이 거셀 움직임이다.
넷째, 바람직한 민군관계의 미정립이다. 60년대부터 우리나라의 민군관계는 군의 정치 전면등장→민군연합의 배후세력으로 자족→군의 정치중립 요구 분위기 고조에 이어 다시 똑같은 사이클의 반복이 거듭되고 있다.
군이 또다시 전면에 나서는 과정에서 빚어진 12.12사태와 광주사태가 지금 중요 선거쟁점이다. 그 와중에 군은 선거 회오리의 중심에 본의 아니게 끌려나왔다. 군대와 군인이라해서 성역이 될수는 없겠지만 그들을 다분히 감성적이고 격정적인 선거판의 증심에 끌어들여 자극하는 것이 과연 군의 정치중립이나 나라의 민주화 진전과 어떤 상관관계를 갖게될지 깊이 생각해볼 일이다.
선거 이후의 갈등·불안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화해와 단합이 앞으로의 선거과정을 포함한 정치의 기본방향이 되지 않으면 안된다.
지금 대권을 향해 뛰고 있는 4주자는 하나같이 빚진 사람들이다. 집권당 후보는 12.12, 광주사태로부터 시작해 지난 8년간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있다. 두김씨는 국민에게 약속한 단일화를 이루지 못해 국민들에게 걱정을 끼치고 있다. 제3의 김씨는 유신독재의 짐을 걸머지고 있다.
그러니 모두 빚진 사람들답게 국민 앞에 겸허해야 하겠다.
우선 말로만 지역감정 해소 운운할게 아니라 득표전략으로 지역감정을 촉발시키지 않기를 촉구한다. 지역감정에 기초해서 대통령이 되어본들 전국민의 대통령이 되기는 글렀다는 것을 깊이 인식해야 한다. 나아가 후보들은 자기 출신 지역에서 타후보에 대한 폭력이 일어나지 않도록 책임지고 영향력을 행사해야 한다. 그러한 영향력의 발휘는 지역감정 해소를 위한 노력과 그의 지도력에 대한 구체적 증거가 될 것이다.
이미 선거쟁점이 된 12.12, 광주사태의 진상과 특정후보와의 관계는 철저히 따져야 한다.그러나 그 과정에서 군을 공연히 툭툭 차는 식이 되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으면 한다.
당장 선거에서 표를 얻는데는 군까지도 선거판에 끌어들이는게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대망을 지닌 정치 지도자로서 집권과정이나 집권 이후에 그것이 결국 큰 부담이 되리라는데도 생각이 미쳐야 한다.「군의 정치적 중립」이니,「군정종식」이니,「문민우위」니 하는 말은 정치적 당위론으로는 듣기 좋은 소리일지 모른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보면 민간정치의 불안정이 계속될때 군의 정치척 역할이 증대되었고, 반대로 사회가 경제·사회적으로 급속히 발전할 때에는 그런 역할이 축소되었다. 남북대치 상황아래 60만 대군을 지닌 우리나라에서 정치적 당위론만으로 군의 정치적 역할이 일시에 사라질수 있겠는가.
이미 우리 사회가 경제·사회적으로 급속히 발전하고 있는 이상 정치·사회적 안정만 이룩해 나간다면 이 문제도 자연스런 해결의 길이 열리게 될터이니 지금 너무 성급하게 군을 몰아세우지 않는게 좋을 것같다.
지금 누가 집권해도 소수대통령이라면 자기 마음대로 나라를 끌고가기는 힘들다. 여야 협의를 통해 거국적으로 국정을 운영하지 않고선 불안정은 극복되지 않는다. 민주화의 과실도 지키지 못한다.
그러자면 지금 선거과정에서부터 그 싹이 보여야 하는데 돌아가는 형편이 너무 그렇지 않아보여 정말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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