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일근의 여름나기 편지] 벌초를 하면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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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에 산소를 가진 후손들 벌초(伐草)를 서둘러야 할 때입니다. 어린 시절 할아버지 따라 벌초를 다닐 때 한가위 벌초는 음력 칠월이 끝나기 전에 마쳐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8월27일이 음력 칠월 그믐이니 오는 주말과 휴일, 벌초하는 후손들로 산마다 길마다 벅적거릴 것입니다.

산골짜기 골짜기마다 높이 올라가 벌초하는 모습들을 볼 때마다 이 나라에 얼마나 많은 효손이 사는지 눈물이 납니다. 벌초하는 것을 보면 우리 나라가 무슨 힘으로 5천년을 이어왔는지 알 수 있습니다. 앞으로도 한민족이 결코 사라지지 않을 종족이라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올해는 비가 많아서 산소마다 풀들 무성할 것입니다. 저도 할아버지, 할머니 산소에 벌초를 다녀와야 합니다. 벌초를 하기 전에 돌아가신 할아버지에게 '풀 좀 치우겠습니다' 고해야 합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풀 속의 풀벌레들에게도 '잠시 피했다가 오너라'고 알려야 합니다. 생전의 우리 할아버지가 저에게 가르친 일입니다.

정일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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