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발 물러선 대법] "집단행동 확산은 막아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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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1백50명 이상의 소장 판사가 사법 개혁을 촉구하며 연명한 사태를 보면서 일단 이들의 의견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대법원 고위 관계자는 17일 이렇게 말하면서 "법원 내부에서 집단행동이 확산되는 것처럼 보이는 상황은 막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며칠 전까지 "대법관 제청은 대법원장의 고유 권한이기 때문에 누구도 이에 대해 왈가왈부할 수 없다"는 원칙론만 강조했었다. 대법원은 이런 기류를 반영해 "차기 대법관 후보 제청 때부터 일선 판사들의 의견을 반영한다"는 잠정 결론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이 청와대의 입장을 일부 반영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대법원의 다른 관계자는 "과거 대법관 제청은 청와대와 대법원장이 내밀한 접촉을 통해 이루어져 왔다"면서 "이번에는 내용이 공개되는 바람에 판사들의 반발이 이어지고 있어 청와대 역시 난처한 입장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는 "청와대 측에서 부담스럽지 않도록 대법원에서도 적절한 대안을 제시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대법원의 잠정 결론에 대해 상당수 소장 판사는 일단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서울지법의 한 판사는 "추후 대법관 제청 때 판사들의 의견을 반영하기로 했다면 대법원도 나름대로 최대한의 노력을 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소장 판사들도 연명 사태로 어느 정도 소득을 얻은 것 아니냐"고 말했다.

그러나 법원 내 일부 진보 성향 판사는 여전히 강경하다. 대법원장 퇴진까지도 거론한 서울지법 문흥수 부장판사는 "이 정도 수준에서 넘어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명서 작성을 주도했던 서울 북부지원 이용구 판사 역시 "차기 대법관 제청 때 어떤 결정이 내려질지는 모르는 것 아니냐"며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입장을 보였다. 이번 주로 예정된 대법관 후보 제청 이후 일부가 사퇴 등 집단 행동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전진배.이수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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