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교양] '모항 막걸리집의 안주는 사람 씹는 맛이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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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부안 읍내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변산해수욕장, 격포, 채석강을 거쳐 굽이도는 산길을 따라 달리다보면 닿는 모항(띠목)이라는 마을이 박형진(43) 시인의 고향이다.

초등학교만 마친 뒤로 농사를 짓고 고기를 잡고 시를 쓰며 살고 있는 박씨는 4년 전에야 농민후계자 자금을 지원받아 자신의 앞으로 된 논 한 필지를 장만했다. 잡곡과 나물로 된 하루 두 끼의 손수 차린 밥상과 갈아입을 베옷 몇 가지, 비바람 막고 몸 누일 집 한 칸이면 족하다는 박씨는 잘 살아보겠다고 두 주먹 불끈 쥐고 이빨 앙다물고 앞만 보며 달려온 사람들에게 묻는다. '시방 잘 살고 있는가'라고. 만족해 한다면 '그래서 행복하냐'고.

'모항…'는 잘 먹고 잘 사는 데 열중하는 세태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살고 있는 모항 사람들, 안락함이 뭔지도 모르고 스러져 간 수많은 서민들의 삶과 생활을 실감나게 그렸다.

남도 특유의 사투리와 토속어 속에 배꼽잡는 해학을 녹여 걸죽하다. 모항 식구들 중에는 밤 썰물에 바람까지 불어 배 떠내려가는 줄 모르고 고기 잡다가 3대가 몰살한 갑열이네, 동네 운동회 달리기와 자맥질 선수일 만큼 다부졌으나 장가들어 아들딸 낳고는 이유없이 술독에 빠져 3년을 폐인으로 지내다 요절한 종태같은, 딱한 친구 천지다. 어렸을때 지나치게 울어댄다고 아버지가 집어던져 실성한 고막녀는 어쩌다 임신해 낳은 아들에게 젖을 물릴 줄도 모르고 똥오줌 치워줄 줄도 모르고 등에 업고만 다니다 아이를 그만 굶겨 죽였다.

전설적인 술꾼 열전도 빼놓을 수 없다. 30년 가까이 면사무소에 다닌 서금용씨는 막걸리가 서금용인지, 서금용이 막걸리인지 헷갈릴 정도다.

막걸리 탐을 하다 치질이 도진 서씨는 '에라 잡것, 견데봐라'하는 심정으로 평소 잘 안 먹는 소주 댓병 한병을 비워낸 후 이튿날 피고름을 한 대접 쏟아내고는 치질을 고쳤다. 서씨 앞에서 술을 거절할 수 없음은 물론이다. 이 마을에선 웬만한 주당이면 삼박사일 술타령은 기본이다.

1부 '울퉁불퉁한 변산 사람들'에 이은 2부 '곡식 키우기나 자식 키우기나'에서는 보리고추장에 밥 비벼 먹던 이야기, 탈곡해 밥해 먹고 빗자루 만들어 쓰던 수수 등 농사와 먹거리 이야기를 담았다.

별날 것도 없는, 어디서나 있을 수 있는 사람 사는 이야기인데도 저절로 미소 짓고 안타까워도 하게 만드는 게 '모항…'의 매력이다.

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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