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뉴스] "피해자가 잘못했네"

중앙일보

입력

# "피해자가 잘못했네"

“도와주세요”

지난 7일 오후 5시 낙성대역 출구
지나가던 여성이 노숙인 김모(54)씨에게
묻지마 폭행을 당하고 있던 상황

곽경배(40)씨가 용기 있게 나서 폭행을 막았지만
팔을 칼에 찔려 손가락이 마비됐습니다

존경받을 일을 했지만 현실은 막막합니다
수개월 걸리는 의상자 지정까지
입원비를 홀로 감당해야 하니까요

그런데 불똥이 애먼 데로 튀었습니다
고맙다는 인사도, 신고도 않고 도망친
피해 여성이 비난을 받고 있는 겁니다

“저녁쯤 피해 여성이 경찰에 신고해서
쌍방과실로 몰리지 않도록 증언해줬다”

기업들이 나서 치료비를 대줬고
피해 여성의 증언 얘기도 나왔지만
비난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아무리 경황이 없어도
도망친 지 한참이 지나서야
신고를 한 점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겁니다

물론 여성의 행동이 정상으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생명의 은인을 외면한 것처럼 보이니까요.

하지만 갑자기 모르던 사람에게
공격을 받은 상황 자체가 정상적이지 않은데

가해자를 비난하거나 의인을 칭찬하기보다
공포에 떨고 있을 지도 모르는 피해자가
정상이기를 기대하는 게 비정상적이지 않을까요

겪어보지도 않은 사람들이 말은 쉽게 합니다
더 알지 못할수록, 잘 모를수록
확신하는 병에 걸리기 쉬운 법입니다

피해자에게 손가락질 할 시간에
의인이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는 현실을
개탄하는 게 맞지 않을까요

왕궁의 음탕 대신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비난의 화살을 피해자에게만 쏟아내는
현실은 너무나 씁쓸하기만 합니다

기획: 이정봉 기자 mole@joongang.co.kr
구성: 김민표 인턴 kim.minpyo@joongang.co.kr
디자인: 배석영 인턴 bae.seoky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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