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르바초프의 신혁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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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인류역사상 최대의 혁명이라고할 10월혁명은 여러차례의 시행착오와 수많은 인명희생을 거쳐 이제 70주년을맞는다.
이 볼셰비키혁명은「마르크스」자신이 유럽 자본주의사회를 횡행하는 괴물이라고 표현한 공산주의를 이땅에 최초로 실현한 대사변이다.
「마르크스」의 가르침과「레닌」의 실천력으로 이룩된 이 혁명이당초 제시한 목표에는 훨씬 미달돼있다해도 인류사의 다른 어느 혁명 못지않게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내릴 수 있다.
10월혁명 자체가 러시아를 자신의 방향으로 개조해 놓았을뿐 아니라 여타 국가들의 공산혁명도 붕괴없이 진행되어 지금 세계인구의 35%를 포용하기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10월혁명은「마르크스」가 그려낸 역사의 5개 단계, 즉 원시 공산사회, 고대 노예사회, 중세 봉건사회, 근대 자본주의사회, 그리고 최선이며 최종인 공산사회 가운데 자본수의 단계를 생략하고 바로 공산사회로 도약함으로써 구미의 선진 자본수의 국가들을앞질러「풍요」와「자유」의 지상천국을 건설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목표는 명백히 빗나갔다.
소련이 근대화를 1백년이나 먼저 시작한 영국·프랑스·미국에는 못미친다해도 이상할 것이 없다. 그러나 같은 시기에 근대화에 나서서 자본주의의 길을 걸어온 서독이나 일본보다도「풍요」와「자유」에 있어 훨씬 뒤져있다는 현실을 소련 자신이 인정하고 있다.
지금「고르바초프」가 추진하고있는 개혁은 그같은 평가를 전제로 하고 있다.「고르바초프」의 개혁은 변화를 거부하는「브레즈네프」체제하의 고령자들을 퇴진시켜 노인정치를 종결시긴 인사쇄신에서 시작됐다.
서방세계에서「소련의 케네디」라고 불리는「고르바초프」는 경직되고 비능률적인 관료제의 혁신, 국민의 근로정신과 윤리를 좀먹어온 과음의 금지, 위성국에 대한 명령체제의 수정등「브레즈네프」가 시도했다가 중단한 시책을 과감히 펴나가고 있다.
「고르바초프」는 과거 지도자들의「거짓」과「위장」위에서는「새롭고도 위대한 러시아」를 건설할 수 없다는 인식에서 출발하고있다. 숙청대상자들의 개인적 자아비판을 국가차원의 자아반성으로 전환했다.
공산주의 70년이 보여준 것은「부단한 변화」다. 공산주의는 결코 불변의 체제가 아니다. 공산세계의 개혁이 최근에 처음 시작된 것도 아니다. 공산주의의 개혁시도가 비록 시행착오의 반복이긴 하지만 그것은 20년대「레닌」의 신경제정책(NEP)이래 계속돼왔다.
그 방향은 ①극좌걱 공산체제로부터 자본주의로의 접근 ②자유화의 확대 ③국제협력의 증진이었다.「고르바초프」의 개혁은 이런 방향의 개혁을 보다 심화시키고 철저히 하려는데 그 의미가 있다.「고르바초프」의 개혁의지는 지금 세계인의 주시를 받고 있다. 정규4년제 대학을 제대로 거친 소련 최초의 지도자인 그는 두꺼오 보수층의 반발을 억누르고 효과적으로 그의 개혁정책을 펴나가려 하고 있다.
그러나 방법이야 어떻든 그의 최종목표는 슬라브족의 전통적 꿈인「러시아에 의한 세계제패」다. 그가 혁뎡 70주년 행사를 단순한 축제의식이 아니라 신혁명추진의 뜻으로 치르고 있는 것은 그 대망을 보여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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