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각서 논란 불끄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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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2003년 10월. 외교부 북미국 외무관은 주한 미 대사관에 조건부로 전략적 유연성을 인정하는 각서 초안 하나를 전달했다. 당시 북미국은 초안을 두 개 만들었다. A안은 '한국 정부가 직접 연관되지 않은 분쟁에 개입돼서는 안 된다'는 조건이 든 것이었다. 대통령의 지침과도 일치한다. B안은 그 조건이 불명확했다. 미측에 전달된 것은 A안이었다.

2004년 1월. 워싱턴을 방문한 당시 위성락 북미국장은 한국 측 초안에 대한 미국 측 답변(각서)을 받았다. 하지만 실무 차원에서 주고받은 각서 초안을 보고받지 못한 위 국장은 북미국 외무관에게 미측에 보낸 각서 초안을 보내라고 지시했다. 그런데 이 직원은 검토안 중 하나였던 B안을 보내는 실수를 저지른다. 내부의 혼선인 셈이다.

문제는 2005년 4월에 불거졌다.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상대로 한.미 간 협상 과정을 조사하던 청와대 국정상황실이 B안이 미측에 전달됐다며 협상이 잘못된 게 아니냐고 따진다. B안은 자체적으로 입수했다고 한다. 이를 근거로 국정상황실은 NSC가 대통령을 기망(欺罔)했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그러나 얼마 후 이 문제는 일단락됐다. 국정상황실이 주한 미 대사관으로부터 자초지종을 직접 확인했기 때문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7일 이런 전말을 설명하며 "각서 논란은 지난해 4월 말 이미 '문제없음'이라는 결론이 내려졌고 국정상황실도 수긍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청와대 측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이종석 통일부장관 후보의 인사청문회에 맞춰 권력 내부의 문건들이 잇따라 폭로되고 있는 의혹은 아직 해소되지 않는다.

박승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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