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율 80% 고이케, 아베 자리 노릴까봐 견제 나선 자민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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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고이케 유리코 도쿄도지사(왼쪽)와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아베 총리를 중심으로 한 일본 자민당 주류는 오는 7월 도의원 선거를 앞두고 본격적인 ‘세 불리기’를 시작한 고이케 견제에 나섰다. [중앙포토]

고이케 유리코 도쿄도지사(왼쪽)와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아베 총리를 중심으로 한 일본 자민당 주류는 오는 7월 도의원 선거를 앞두고 본격적인 ‘세 불리기’를 시작한 고이케 견제에 나섰다. [중앙포토]

일본 자민당 주류가 갈수록 세를 불리는 고이케 유리코(小池百合子·64) 도쿄도지사의 행보에 마침내 제동을 걸고 나섰다. 22일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전날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측근인 니카이 도시히로(二階俊博) 자민당 간사장 등 주요 인사 약 130명이 회합을 갖고 고이케 당 제명론까지 거론하는 등 본격적인 고이케 저지 대책을 논의했다고 보도했다.

고이케가 주도한 사실상 신당 #도의회선거 앞두고 지지 오르자 #자민당 주류 130명 모여 회의 #당서 고이케 제명론까지 거론돼

오는 7월 예정된 도의원선거에서 고이케가 주도하는 사실상의 신당인 ‘도민제일모임’의 지지율이 높아지는 가운데 아베 총리가 연루된 모리토모학원 스캔들로 위기에 몰린 자민당 주류가 반격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이날 회합을 주도한 건 도의원 선거를 앞두고 위기감이 팽배한 자민당 도쿄도당이었다. 시모무라 하쿠분(下村博文) 도쿄도당 간사장 대행은 “고이케 세력이 도의회 과반 의석을 확보하면 도의회는 거수기가 되고 도정이 망가질 것”이라며 고이케 신당의 과반 저지를 호소했다.

후카야 다카시(深谷隆司) 자민당 최고고문은 “도민제일모임이 공천한 후보는 자민당의 공천을 받지 못한 낙오자들”이라는 가시 돋힌 말로 참가자들의 박수를 받기도 했다. 일부 의원들은 고이케를 당에서 제명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금까지 자민당 주류 세력은 자민당 소속이면서도 독자 노선을 강화하는 고이케의 움직임에 조심스레 불만을 표했을 뿐 공개적으로 맞서진 않았다.

지지율 80%에 육박하는 고이케와 전면대결을 벌여봤자 득보다 실이 크다는 판단에서다.

자민당은 지난해 10월 중의원 보궐선거에서 고이케의 지원 유세에 힘입어 공천 후보들이 압도적 표차로 당선되는 등 고이케의 인기 덕을 톡톡히 봤다.

그러나 고이케가 올해 초 지역 신당 ‘도민제일모임’을 만들고 도의회 단독 과반을 차지하겠다며 본격적으로 자민당과의 선긋기에 나서자 자민당 측도 더이상 고이케를 좌시할 수 없게 됐다.

관건은 오는 7월에 실시되는 도쿄 도의원선거다. 현재 자민당은 최다 의석(57석)을 점하고 있지만, 고이케 지지층과 자민당 지지층이 상당 부분 겹쳐 최악의 경우 도의회 의석 대다수를 고이케 측에 내줄 수도 있다.

이미 도쿄도의회 소속 자민당 의원 5명이 탈당 후 고이케 지지를 선언하고 연립여당 공명당이 도의회 선거에서 고이케 측과의 연대를 선언하는 등 여당 내에서도 고이케 열풍이 거세지고 있다.

자민당 주류의 고이케 견제는 보다 큰 이유가 있다. 고이케 돌풍이 아베 총리의 정치적 기반까지 위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 정가에선 “대중적 인기가 높은 고이케가 도의회를 점령한 뒤 총리 자리를 노릴 것”이란 전망이 팽배하다.

고이케는 아베 총리를 중심으로 뭉쳐 있는 자민당 주류와는 거리가 멀다. 2012년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아베 총리가 아닌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당시 간사장을 지지하면서 아베 총리의 눈밖에 났기 때문이다.

지난해 7월 도쿄도지사 선거에도 자민당의 공천을 받지 못해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그러나 고이케가 여론의 지지를 등에 업고 자민당이 공천한 마스다 히로야(增田寬也) 전 총무상을 누르며 도지사에 당선되자 상황은 반전됐다. 고이케의 인기에 자민당 주류가 끌려다니는 형편이 된 것이다.

고이케의 인기 비결은 ‘개혁’과 ‘추진력’이다. 그는 ‘도정(都政)개혁’을 외치며 도지사에 당선된 뒤 2020년 도쿄올림픽 예산 문제, 일본 최대 수산물 시장인 쓰키지(築地) 시장 이전 문제 등 도쿄 시민의 관심사를 차례로 해소하며 시민들을 열광시켰다. 일례로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회장을 도쿄로 초청해 “도쿄올림픽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을 것 같다”는 공감을 이끌어내 시민들의 예산 부담 우려를 씻어냈다.

이기준 기자 foridealis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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