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리스트 피해사업 복원한다

중앙일보

입력

블랙리스트(문화예술계 지원배제 명단) 사건으로 폐지됐거나 축소된 문화예술 지원사업 7개가 복원된다. 또 예술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한 ‘예술가 권익보장법’이 제정되고 문체부 공무원이 상급자의 위법한 지시를 거부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된다.

문체부는 위와 같은 블랙리스트 재발방지 대책을 담은 ‘문화예술정책 공정성 제고방안’을 9일 발표했다. 문체부가 이날 발표한 방지 대책은 크게 5가지다.

 우선 블랙리스트 사건 이후 지원규모가 줄었거나 사업 자체가 없어진 7개 지원사업을 복원했다. 폐지됐던 문화예술위원회(문예위)의 우수문예지 발간 지원사업과 공연장 대관료 지원사업을 각 5억원, 15억원씩 지원해 되살린다. 영화 '다이빙 벨' 상영 이후 지원금이 절반 가까이 삭감됐던 부산영화제도 이달 중 예정된 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의 심사결과에 따라 지원금을 늘린다.

이영열 문체부 예술정책관은 “문제가 불거진 7개 지원사업을 우선 복원하지만 이전 지원 수준에 100% 미치지는 못한다"며 "앞으로 복원사업의 규모를 늘릴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체부는 지원사업 정상화와 문학·출판·연극 분야 긴급 지원을 위해 예산 85억원을 확보했다.

 심사 공정성 확보를 위한 시도도 시작됐다. 문예위는 올해 지원사업부터 심의위원을 풀(Pool) 제도로 운영하고 심의 회의록을 공개하는 등 개선된 지원심의 방식을 적용하고 있다. 아울러 예술지원기관의 독립적인 운영을 위한 제도적 방안도 마련된다. 문예위와 영진위의 위원장은 현재 문체부 장관이 임명하지만, 해당 위원회가 선출하는 방법을 추진한다.

 이날 발표된 방지대책 가운데 가장 본질적인 대책은 올 상반기 안에 문체부가 발의할 예정인 ‘예술가권익보장법’ 이다. 헌법 22조에 명시된 예술의 자유를 구체적으로 보장하는 법률로, 문체부는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거나 예술 지원의 공정한 심사를 방해하는 행위를 형사처벌 할 수 있는 규정을 두기로 했다. 이와 함께 예술가권익위원회를 구성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를 감시하고 조사한다.

 문체부 공무원의 행동강령도 손본다. ‘문체부 공무원 행동강령’을 다음달까지 개정해 상급자의 부당한 지시를 거부해도 인사에서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보호한다. 더불어 상급자의 위법하고 부당한 지시를 신고할 수 있는 감사관 핫라인도 신설한다. 상부 지시라는 이유로 블랙리스트가 집행된 과정에 대한 문체부 내부의 개선책이다.

 김영산 문체부 문화예술정책실장은 “오늘 발표한 재발방지 대책은 문화예술정책의 정상화를 위한 첫 걸음”이라며 “현장 예술인과 소통해 발전한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문체부의 재발방지 대책에 대한 문화예술계 반응은 싸늘하다. 진상규명은 물론이고 블랙리스트 연루자의 처벌이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원재 문화연대 문화정책센터소장은 “문화예술 생태계를 파탄에 빠드린 블랙리스트 사건의 장본인이 문체부”라며 “문체부의 발표 내용은 조직을 지키기 위한 관료의 자구책일 뿐”이라고 반발했다.

 손민호 기자 ploveson@joongang.co.kr

문체부 블랙리스트 재발방지 대책 발표 #표현의 자유 보장하는 법률도 제정 #문화예술계 "진상규명 안 됐다"며 반발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