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에 살다] (42) 권금성산장의 사연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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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케이블카가 놓이며 권금성까지는 누구든 쉽게 올라올 수 있게 됐다. 그러면서 사방이 깎아지른 절벽으로 둘러싸인 까닭에 권금성 일대는 설악산 최고(?)의 자살터라는 이름을 날렸다. 그런 소문과 더불어 산장의 낙서판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기능을 담당하게 되었다.

자살하려는 사람은 그냥 죽지 않는다. 뭔가를 남기게 마련이다. 그럴 때 그 낙서판은 세상살이에 더 이상의 흥미를 잃은 그들이 골라잡게 되는 유서판이 된다.

혼자 산장으로 올라와서는 커피를 홀짝거리다가 슬며시 일어선 사람이 '왔노라 보았노라 가노라'라든가, '사랑하는 설악의 품으로'라든가, '누구 누구는 잘 먹고 잘살아'라든가, '내가 헛되이 보낸 오늘은 그가 그토록 진실하게 살아보려던 내일이었습니다'라는 식의 내용을 낙서판에 적어뒀다면 틀림없는 신고감이었다.

그렇게 하여 몇 건의 자살을 방지했으며 미처 손을 쓰지 못한 경우에는 낙서판으로 추적해 자살자의 신원을 알아낸 적도 있다.

이런 일도 있었다.

군인 복장의 어떤 젊은이가 헐레벌떡 뛰어와서는 애인이 권금성 자살바위에서 실족해 떨어져 사망했다고 신고해 왔다. 산장지기 유창서씨는 그 군인을 데리고 사고 현장으로 달려 갔다. 절벽 아래쪽으로 하강하며 추락장소로 다가갔더니, 천운으로 군인의 애인은 살아 있었다. 실신했다가 깨어난 그녀가 유씨 곁에서 놀란 눈으로 자신의 애인을 바라보던 그 군인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아저씨, 바로 저 자식이 날 떠밀었어요."

그 군인은 자신이 입대 후 돌연히 변심해 고무신을 거꾸로 신은 애인의 마음을 돌려보려고 자살바위로 데리고 가서는 마지막으로 윽박질러보다가 그녀가 앙칼지게 나오자 그만 일을 저지르고 만 것이었다. 애인을 절벽 아래로 떠민 그 군인에게는 좀 미안한 얘기지만 그의 애인이 살아나서 얼마나 다행인가.

"설악의 산심은 내 털만큼이나 푹신푹신한 게야."

곰 같은 이 권금성의 산장지기는 그 일을 다시 떠올리며 정말 푹신푹신한 느낌을 주는 자신의 턱수염을 자랑스레 쓰다듬었다.

설악은 제주도에 버금가는 국내 신혼여행지다. 그런 신혼여행지에는 연극 대본처럼 여행코스가 짜여 있게 마련인데 설악을 찾는 신혼부부들은 어김없이 권금성 산장에 올라 유창서씨를 가운데 두고 기념촬영을 하게 된다. 유씨와의 기념촬영은 설악을 다녀갔다는 증명사진과 다름없었다. 그럴 때마다 신혼부부들 사이에서 눈만 빠곰히 뜨고 앞쪽을 바라보는 수염 덮인 얼굴은 사람이라기보다는 반달곰을 연상시켰다.

유씨의 심성 또한 외모 이상으로 반달곰을 닮았다. 1971년 겨울 산간학교의 최종 빙벽훈련 때 유씨는 다른 강사진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30여명의 수강생을 토왕폭 하단에 한꺼번에 붙여놓았다. 토왕폭의 사나이로 태어나자면 무조건 토왕폭에 붙어 토왕폭을 두드려보아야 한다고 가르친 것이었다.

그런 반달곰 한 마리가 설악산 반달곰이 모두 사라지고 말았다는 요즘에도 권금성 산장에서 곰털 수염을 키우며 살고 있는 것이다.

박인식 <소설가.前 사람과 산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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