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기의 反 금병매] (114)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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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왕노파는 사병에게서 두 개의 서신을 받아들고 가만히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차 한 잔 하고서 안심하고 빨리 돌아가보게나. 무송 대장이 다리를 다쳤다면서."

왕노파가 사병을 아무도 없는 찻집으로 불러들여 호두차를 한 잔 대접해주고 만두도 내어놓았다. 그러면서 사병이 마음이 바뀌어 맡긴 편지를 돌려달라고 하면 어쩌나 조마조마하였다.

"그래도 현감에게 드리는 편지는 내가 직접 가져가야 하는 거 아닌가?"

사병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만두 하나를 젓가락으로 집어 입에 넣었다.

"현감을 직접 만나뵙기나 할 것 같소? 현감이 얼마나 바쁘신 몸인데. 어차피 현청에 들어가서도 다른 관리에게 그 편지를 맡기고 나올 거란 말이오. 그런데 그 관리가 무송 대장에 대하여 나쁜 마음을 품고 있는 사람이라면 슬쩍 편지 내용을 바꾸어 올리는 수도 있어요. 그러니 내가 잘 아는 그분에게 맡기는 편이 훨씬 나아요. 청하현에 살았으면 서문대인이라고 잘 알겠네. 내가 말하는 그분이 바로 서문대인이오."

"서문대인이라면 현청을 자기 집 드나들듯 하는 분 아니오? 그럼 잘 부탁한다고 꼭 전해주세요. 나는 할머니만 믿고 돌아가겠소."

사병은 감사의 인사까지 하고 서둘러 돌아가려고 하였다. 왕노파가 사병에게 당부하다시피 말했다.

"가다가 동네 사람들을 만나도 무송 대장이 곧 돌아올 거라는 소리 하지 말아요. 죄지은 사람들이 미리 도망을 가버리면 안 되니까. 아예 동네 사람들이랑 인사도 하지 말고 급히 돌아가란 말이오."

"듣고 보니 그렇군요. 나는 무송 대장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처럼 해야겠군요."

사병이 왕노파 말을 곧이곧대로 듣고 날이 더 밝아오기 전에 길을 떠났다. 사병이 동네 어귀로 멀어지는 것을 보고 왕노파는 부리나케 금련네로 달려갔다. 현관문을 두드렸으나 안에서는 인기척이 없었다. 정말 모두 어디로 갔단 말인가. 다시 한번 더 문을 두드리자 그제서야 영아가 하품 소리를 내어가며 방에서 나와 문을 열어주었다.

"너의 엄마 어딨어? 서문대인 나리는?"

"몰라요. 이층에 같이 붙어 있겠죠, 뭐. 죽은 우리 아버지만 불쌍하지."

"얘가 못하는 소리가 없어. 아이는 어른들이 하는 일에는 끼어들지 않는 거야. 더군다나 계집아이가."

영아는 입을 비쭉이며 다시 방으로 들어가고 왕노파는 한 걸음에 두 계단을 건너뛰며 이층으로 올라갔다. 서문경과 금련은 거의 벗은 몸으로 그때까지도 늘어지게 침대에서 자고 있었다.

"나리 일어나세요. 부인도요. 큰일 났어요."

왕노파가 두어 번 더 소리친 후에야 두 사람이 부스스 눈을 떴다.

"할머니 무슨 일이에요? 당신 빨리 옷 입어요. 할머니 오셨어요."

금련도 옷을 끌어당겨 몸을 대강 가리며 하품을 크게 해대었다.

"무송이 곧 돌아온대요. 팔월 중에. 사병 편에 편지를 자기 형한테 보냈어요. 오늘 내가 그 사병을 만나 편지를 대신 맡아 놓았어요. 현감에게 보내는 편지는 서문대인이 전해드리도록 하겠다고 하여 그것도 맡아놓았어요. 두 사람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에요. 무슨 대책을 세워야지."

그 말에 두 사람이 동시에 벌떡 몸을 솟구쳐 일어나 앉았다.

"무, 무, 무송이 정말 돌아온대요? 나는 그 사람 하도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아서 귀향길에 강도를 만나 죽지 않았나 하고 은근히 기대했는데. 이거 어떡한다? 무송이 돌아오면 틀림없이 자기 형이 어떻게 죽었는지 추적해 들어올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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