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철한 중국인도 있다 … “정부가 인민 강제 말라, 난 롯데서 쇼핑”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6면

신경진 특파원 베이징 르포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부지를 제공한 롯데 그룹에 대한 중국 당국의 보복이 모든 중국인의 지지를 받는 건 아니다. 중국 정부의 보복성 행정조치를 비켜나 정상 운영 중인 롯데 매장들은 평소와 크게 다름없는 모습이었다. 쇼핑 중인 시민들은 냉철한 목소리로 정부를 비판하기도 했다.

“보복은 진정한 의미 애국 아니다” #“왜 미국엔 가만 있고 한국 괴롭히나”

6일 베이징 역에서 가까운 롯데마트 충원먼(崇文門)점은 점심시간이 되자 면과 만두 요리 매장에 긴 줄이 생겨날 정도로 손님이 많았다. 이곳에서 만난 60대 후반 은퇴 공무원은 “2008년 (프랑스에서 벌어진 베이징 올림픽 성화봉송 탈취 사건으로 인한) 카르푸 매장 불매운동 때도 결국 손해 본 것은 중국인 직원들이었다. 정부 정책이 인민의 의지를 강제해선 안 된다”고 불만을 토했다. 그는 “누가 뭐래도 나는 롯데에서 계속 쇼핑할 것”이라며 “이런 (보복) 행위는 진정한 의미의 애국이 아니다”고 덧붙였다.

관련기사

오후에 찾은 베이징 롯데마트 주셴차오(酒仙橋)점 역시 정상 영업 중이었다. 3층 건물 전체를 사용하는 주셴차오점은 롯데마트 화북본부가 있는 베이징에서 가장 규모가 큰 매장이다. 50대 리(李)씨는 “사드는 정치하는 분들이 해결해야 할 문제이고 정치와 관계 없는 백성은 생필품을 사야 할 것 아니냐”고 말했다. 70대 후(胡)씨는 “(롯데) 제재 여부는 백성과 시장이 결정할 문제”라며 “이웃 나라끼리 우호적으로 지내야 마땅하다”며 제재에 반대를 표시했다.

제재 찬성 목소리도 있었다. 20대 초반의 왕보(王博)는 사드에 반대한다며 “롯데마트 이용에도 당연히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답했다. 매장 관계자는 “사드 부지 교환 이후 매출에 영향이 없지 않다”며 “중국인 직원들의 불안감이 가장 큰 문제다. 한국 정부가 해결책을 제시해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추천기사

극단적인 불매·반한 행위에 자성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많다. 인터넷 뉴스사이트인 텅쉰(騰迅)에는 베이징 도심 왕푸징(王府井)의 한 식당 주인이 한국인 손님을 향해 “한국인은 필요 없다. 당장 나가라”고 소리치는 장면을 담은 영상이 게시됐다. 하지만 이 영상에 달린 댓글들은 “애국을 하려면 이성적으로 해야지 이런 극단적인 행위는 곤란하다”는 내용이 주류다. “사드는 한국과 미국이 합의해 하는 일인데 왜 미국엔 한마디도 못하고 한국만 괴롭히느냐”는 댓글도 있다.

주중 대사관 관계자는 “중국 정부의 사드 보복이 확대 중이지만 일반 국민의 반응은 아직은 과격 양상을 보이지 않고 있다”며 “하지만 2012년 일본과의 영토 분쟁 당시 일본 상품 불매운동과 일본계 수퍼 매장 약탈 사건이 일어난 적도 있는 만큼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는 태세를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신경진 특파원 shin.kyungji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