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대통령 거쳐간 '하버드 로 리뷰' 편집장에 첫 흑인 여학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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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지리아 이민자 가정의 흑인 여학생이 미국 하버드법대의 130년 전통을 깼다. 법대에서 발행되는 저널 가운데 가장 저명한 ‘하버드 로 리뷰(Harvard Law Review, HLR)’의 편집장으로 아마이마이 우마나(24ㆍ사진)가 당당히 선출된 것이다.
28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의 보도에 따르면 최근 학생 에디터 92명의 선거를 통해 131대 편집장으로 우마나가 뽑혔다. 우마나는 NYT와 인터뷰에서 “내가 이 자리에 있다는게 아직도 마법에 걸린듯 믿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주변 동료들은 “마법과 관계없다”고 입을 모았다.
우마나는 에디터들 앞에서 이틀에 걸쳐 치러진 경합 끝에 선출됐다. 총 12명의 후보가 나섰다. 이 가운데 8명이 여성이고, 8명이 소수그룹이었다. 우마나의 전임 편집장이었던 마이클 주커만은 “일에 대한 열정이나 남을 이끄는 리더십, 냉철한 판단력 면에서 우마나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고 한마디 했다.
HLR은 ‘공부벌레’로 통하는 하버드법대 학생들이 법논리에 맞게 글쓰기를 하고 이슈가 되는 주제를 정해 논쟁을 벌이는 장으로 활용되고 있는데, 그 수준이 웬만한 전문 법학 저널 이상이다. 이 리뷰에 재학중 에디터로 일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법률시장 어디를 가도 환영이다. 현재 미국 대법원 판사 가운데 절반이 HLR의 에디터 출신이다.
그런 에디터 가운데 가장 높은 지위인 편집장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영예로우면서 책임이 막중하다. 27년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이 자리를 거쳐갔다. 여성 편집장은 41년전 수전 에스트릭이 처음이었다. 이후 히스패닉과 아시아인, 흑인 남성과 게이 등이 가끔식 편집장을 맡았지만 흑인 여성 편집장으로는 우마나가 130년만에 처음이다.
“흑인 여성들은 지금까지 법이 만들어낸 풍경에서 비켜 서있었다. 법적인 대화를 나눌 수 없었고, 그 때문에 불이익도 받았다. 그런 점에서 나를 비롯한 흑인여성 친구들이 중요한 동행에 나서는 중이다.”
우마나는 펜실베이니아주에서 4녀 가운데 3녀로 태어났다. 주 정부에서 통계관으로 일하던 아버지가 2010년 세상을 뜨면서 다소 어려운 환경 속에 하버드대에서 행정학을 공부했다. 2014년 하버드법대에 입학한 그의 꿈은 엄청난 로펌에 들어가 큰 돈을 버는게 아니다. 국선변호인 단체에 들어가 힘없는 소수그룹을 변호하는 것이다. 지난해 여름에도 뉴욕 브롱스의 국선변호인 사무실에서 일했고, 올 여름에도 수도 워싱턴에서 비슷한 업무로 인턴을 할 예정이다.
“인턴을 하면서 나와 비슷한 환경의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그들은 법적인 시스템에서 전혀 도움을 받지못해 정당한 권리를 행사하지 못하고 오히려 피해를 봤다. 공권력의 횡포에 목숨을 빼앗긴 나타샤 매케나, 타니샤 앤더슨 같은 흑인 여성들이 주변에 많다. 이런 사람들이 나를 HLR의 편집장으로 이끌었다고 생각한다.”
우마나의 멘토 역할을 맡은 루스 오크디지 미네소타법대 교수는 우마나가 반드시 사회의 중추가 될 것으로 예상했다. “우마나는 단순히 자신만 생각하는 ‘범생이’가 아니다. 자신을 모델로 생각하는 흑인 소녀들, 흑인여성이기 때문에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사람들에 책임감을 느끼면서 성장하고 있다. 그래서 우마나의 리더십은 남다르고 정신의 결정체로 나타난다.”
우마나가 편집장으로 선출됐지만 하버드법대에서 흑인은 여전히 소수다. 전체 학생의 5.7%가 흑인 남성이고, 9.6%가 흑인 여성이다. 히스패닉과 아시안까지 포함하는 소수그룹은 32.9%에 불과하다. 그나마 에디터 모임은 다양성 면에서 사정이 낫다. 92명 에디터 가운데 46%가 여성이고, 41%가 소수그룹이다.
우마나는 “다양성의 가치를 잘 알고있다”면서 “내 임기동안 목표는 다양한 그룹에서 에디터를 선발하고, 지금까지와는 다른 시각을 갖춘 저자들의 글을 전진배치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뉴욕=심재우 특파원 jwsh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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