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욕심만 앞선 규제개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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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무조정실 관계자는 31일 규제개혁 목표에 비해 실적이 저조한 이유를 묻자 이렇게 답했다. 한마디로 시간이 촉박하다는 얘기다.

2004년 8월 출범한 규제개혁기획단은 그동안 33개의 덩어리 규제를 개혁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덩어리 규제들은 모두 850개의 세부과제로 구성돼 있다. 이 중 최종 완료된 과제는 절반에도 못 미치는 414개에 불과하다.

특히 최근 선정된 사업자 교육 관련 규제는 세부과제도 아직 정하지 못한 상태다. 33개 덩어리 규제 중 기획단 스스로 제시한 시한 내에 최종 입법까지 완료한 과제는 세부과제가 두 개밖에 없는 '민간 SOC 투자 규제' 단 한 건이다. 여섯 개 과제가 시한을 넘겨 질질 끌고 있다. 실적이 저조하다는 평가가 나올 만한 상황이다. 이해찬 총리가 직접 나서 "타당한 이유 없이 규제개혁 전략과제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책임자를 처벌하라"는 지침을 내릴 정도다.

그런데 이날 규제개혁기획단은 다시 21개의 새로운 정비 과제를 선정해 국무회의에 보고했다. 대상 과제도 학원 규제와 주택공급 규제, 기업공개 제도, 수질보전지역 규제 등 하나같이 첨예한 대립이 예상되는 것들이다.

기획단은 2년 시한을 두고 생긴 한시조직이다. 시한을 둔 것 자체가 그만큼 현 정부의 규제개혁 의지가 확고하다는 뜻으로 평가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날 발표는 규제개혁기획단 역시 성과주의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자아내게 한다. 출범 당시 제시한 과제가 54개라는 것도 우연은 아닌 것 같다.

그동안 33개에 대해 개선안을 마련했으니 기한 내에 나머지도 내놓겠다는 욕심이 아니냐는 것이다. 더불어 국민은 책상에서 마련된 개선안보다는 단 몇 개라도 현실성 있고 피부에 와 닿는 규제개선법 개정까지 책임지는 정부를 더 보고 싶어한다는 사실을 잊고 있는 것이 아닌지도 궁금해진다.

최현철 사회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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