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상 갈등' 한일, 싸늘한 신경전 속 장관회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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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외교부]

[사진 외교부]

주요20개국(G20) 외교장관회의가 열리고 있는 독일 본의 매리어트 본 호텔. 17일 오전 11시30분으로 예정된 한·일 외교장관회담을 앞두고 양 측 사이엔 서늘한 기류가 흘렀다. 부산 일본 총영사관 앞 소녀상 설치로 한·일 간 갈등이 촉발된 뒤 양국 외교수장이 처음 만나는 자리였다.

먼저 회담장에 들어선 것은 윤병세 외교부 장관. 회담 시작 시간을 3분 앞둔 오전11시27분 모습을 드러냈다. 7분 뒤인 11시34분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이 복도에 들어섰다. 방 앞에 나와 맞이하는 윤 장관에게 기시다 외상은 한국어로 “안녕하세요”라고 작게 말했고, 윤 장관이 좀 더 큰 목소리로 “안녕하세요”라고 답했다.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는 가운데 두 장관이 악수를 했다. 윤 장관과 기시다 외무상 모두 지금의 양국관계를 보여주듯 어색한 옅은 미소만 띈 굳은 표정이었다. 한국 취재진이 일본어로 “나가미네 주한 일본 대사를 언제 돌려보낼 것인가”라고 물었다. 기시다 외무상은 아무런 답도 하지 않았고, 두 장관은 회담장으로 들어갔다.

양자회담에서 통상 양 측의 모두발언이나 간단한 인삿말까지는 언론에 공개하곤 하지만 이날은 달랐다. 악수도 회담장 밖에서 하고, 두 장관은 인사 외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두 장관이 회담장에 들어서자마자 일본 측 관계자들은 황급히 방문을 닫았다. 결국 회담 테이블에 마주보고 앉은 윤 장관과 기시다 외무상의 모습은 언론에 전혀 포착되지 못했다. 회담이 시작되기 전 좁은 복도에 취재진이 몰려 혼잡한 상황이 벌어지자 한국 측이 현장에서 “회담장 안에서 악수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지만, 일본 측은 거절했다.

이런 의전은 일본 측의 요청에 따른 것이라고 한다. 정확한 이유는 공식적으론 확인되지 않았지만, 일본 국내 여론을 의식한 조치로 보인다. 일본 내에선 부산 소녀상 설치에 부정적인 여론이 압도적이고, 일본 정부의 보복 조치를 지지하는 국민이 많기 때문이다. 이런 국내 여론을 생각했을 때 기시다 외무상이 윤 장관과 다정한 모습을 연출하기는 부담스러웠을 것이란 관측이 외교가에서 나온다.

국내 여론을 의식할 수밖에 것은 윤 장관도 마찬가지다. 부산 소녀상을 건드려선 안 된다는 의견이 대다수이기 때문이다. 4년여의 임기동안 10번 이상 회담한 친한 사이의 두 장관이 이날은 싸늘한 굳은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회담 전부터 장외 신경전도 치열했다. 회담 전날인 16일 한·일 취재진이 모두 모여 있는 회의장 미디어 센터에는 이상한 소문이 돌았다. 한국 측이 굉장히 원해서 한일 회담을 하기로 했는데, 기시다 외무상이 너무 바빠서 취소될 것 같다는 이야기였다. 사실무근이었다. 실제 먼저 회담을 하자고 한 쪽은 일본이었다고 한다.

한·일 외교장관 회담 개최가 확정된 뒤에도 여러 이야기가 나왔다. 기시다 외무상이 언제까지 소녀상을 이전할 지 한국 측에게 약속을 받아낼 것이란 소문이었다. 소문의 근원은 파악되지 않았다.
이날 회담은 당초 예정된 30분을 조금 넘긴 약 40분 동안 진행됐다.

본=유지혜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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