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장 기각 직후부터 매일 특검과 도시락회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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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49) 삼성전자 부회장의 사전구속영장이 발부된 것과 관련해 박영수 특검의 '도시락 회의'가 회자되고 있다. 특검팀은 지난달 16일 한차례 이 전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이틀 뒤 열린 영장 실질심사에서 쟁점이 된 주된 혐의는 ‘뇌물죄’로 이번과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법원은 “이 부회장과 박근혜 대통령이 만난 것은 2015년 7월 25일인데 삼성물산 합병이 결정된 것은 그 이전인 7월 17일”이라며 “만나기도 전에 뇌물 대가가 전달된 것에 대한 소명이 부족하다”는 이유를 들어 영장 청구를 기각했다.

특검팀 관계자에 따르면 영장이 기각 된 후 수사팀 내부에선 ‘삼성 수사를 제대로 못하면 다른 대기업들 수사는 큰 의미가 없다’는 무력감이 감돌았다. 하지만 박 대통령-최순실-삼성이 얽힌 뇌물죄 혐의를 입증하기 위해서라도 이 부회장에 대한 조사를 심도 있게 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었다고 한다. 결국 "소명이 부족하다는 점을 받아드리고 증거를 보충하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박 특검은 이후 매일 점심에 팀을 번갈아가며 도시락 회의를 열었다. ‘허물 없는 커뮤니케이션으로 검사나 수사관들이 수사 동력을 잃고 방황하는 것을 막아보자’는 취지였다고 한다. 특검팀은 3주 동안 이 부회장의 뇌물죄 혐의를 입증할 증거를 모으는 데 사활을 걸었다. 박상진(64) 삼성전자 대외협력 담당 사장을 비롯해 삼성 관련자들을 속속 불러 특검 사무실 안팎에서 만났다. 특검 관계자는 “특검의 조사 장소는 한 곳이 아니다. 민감한 시기인만큼 신원이 노출되는 것을 꺼리는 임직원이 많아 곳곳의 제3의 장소로 불러 조사했다”고 전했다.

이 과정에서 ‘삼성 합병’ 이후에도 삼성이 청와대에 청탁할 만한 다른 사안이 있었다는 사실이 복수의 진술로 드러났다. 지난 16일 영장 실질심사에서 핵심 쟁점이 된 ‘SDI의 주식 처분 특혜’등이 대표적이다. 때마침 특혜를 준 기관으로 지목된 공정거래위원회 내부에서도 관련 제보가 전해져왔다. '공정위에 증거가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지난 3일 공정위를 전방위 압수수색했다.

뒤늦게 발견된 안종범 전 청와대 수석의 수첩 39권은 핵심 증거가 됐다. 실제 특검팀은 영장 실질심사 때 이런 서류들을 큰 여행가방 1개에 모두 담아 제시했다고 한다.

김나한 기자 kim.nah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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