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의 응어리 푸는 길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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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7순의 정주영회장은 다소 피로하고 초췌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격앙된 목소리에 담긴 의지는 결연했다.
『현재 분규를 일으키는 일부 근로자들은 각목을 휘둘러 기존의 합법노조를 내쫓고 소위 「민주노조」를 결성했읍니다. 이른바 「민주노조」는 곧불법·폭력노조인 것입니다. 따라서 근로자 총의에 따른 합법적인 새로운 노조집행부가 구성되어야 합니다
정회장은 그러면서「임금14%인상」수습안을 제시했다. 『근로자들의 대부분은 장기간분규에 시달려 이제는 일하기를 원하고 있기 때문에 이 수습안을 받아들여 회사가 정상조업에 들어갈수있을 것』이라고 확신을 표시했다.
『거듭해 말하지만 폭력노조와는 어떠한 협상도 할수 없다는 것이 본인의 확고한 소신입니다.』
수습안의 전제인「새노조집행부 구성」을 거듭 강조하는 노회장의 요지부동 자세에선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의 강경한 의지가 느껴졌다. 그것은 단단히 맺힌 감정의 응어리를 내비치는 듯했다.
16일 하오6시30분 서울계동 현대빌딩 12층 회의실에서 정회장이 현대중공업 노사분규 회사측 독자수습안 발표 기자회견을 끝내갈 쯤엔 울산현지에도 그 소식이 전해졌다. 긴급 회동한 노조 수습대책위원회측은 정회장의 수습안을 듣고는 그 전제조건에 즉각 반발을 보였다.
『회사측이 현노조집행부를 인정하지않는한 정상조업에 응할수 없다.』
노회장의「희망적 확신」과는 달랐다. 양측은 분규발생 이후 지금까지 서로가 감정대립으로만 치달아왔다.
분규의 양대 핵심이었던 「임금」과「노조」가운데 임금은 뒷전으로 밀렸고 노조, 그것도 현집행부의 인정 여부가 초점으로 압축된 채 쌍방이 자기주장만을 거듭하며 감정을 돋웠다.
양쪽의 입장에서는 자기 주장만이 더 옳다고 생각할지 모르나 제3자가 보기에는 양쪽이 똑같이 잘못을 범하고 있는 인상이다.
그것은, 감정은 아무리 절실하다해도 그것으로 일을 처리할수 없고 해서도 안되기 때문이다. 문제를 푸는길은 먼저 쌍방간에 쌓인 감정의 응어리를 푸는 일만 같다.
김창욱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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