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시평] 언론 탓으로만 돌릴 것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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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출범한 지 6개월도 안 된 노무현(盧武鉉) 정부가 비틀거리고 있다. 대통령의 권위는 땅에 떨어지고 정부 정책은 영이 서지 않는다. 오죽하면 최근의 국정토론회에서 대통령이 직접 정부의 국정 주도권 상실에 대해 우려를 토로했겠는가.

盧대통령과 그 참모들은 참여정부의 어려움을 주로 언론 탓으로 돌리고 있다. 정부가 비교적 잘하고 있는데도 언론이 대수롭지 않은 문제를 과장하거나 왜곡하는 바람에 정부가 억울한 피해를 보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런 측면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언론이 지독하게 군다고 해서 6개월도 되지 않은 정부의 권위가 이처럼 떨어질 수는 없다. 비판적인 언론 탓으로만 돌리지 말고 좀더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 볼 일이다. 그렇다면 현재의 위기는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첫째, 경제가 좀처럼 회복되지 않고 있다. 경기가 외환위기 이후 최악이라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리고, 졸업을 앞둔 대학생들은 취직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경제가 어려우면 정부의 인기가 높을 수 없는 법이다.

둘째 원인은 정치지도력 상실이다. 적대적인 야당의 지지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하더라도, 여권 전체가 권력다툼을 하는 듯한 모습은 문제다. 개혁신당을 추진했던 신주류의 조급함과 여권 내 세대갈등이 결과적으로 대통령의 지도력을 훼손하고 일부 지지세력을 돌아서게 만들었다.

셋째 원인은 집권층의 도덕성 논란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정권 출범과 함께 제기된 대통령 친인척 및 측근들의 비리 의혹과 청와대 일부 비서관들의 일탈 행위는 도덕성 시비를 낳았다. 과거 정권들보다 도덕적으로 우월함을 내세웠던 참여정부이기에 작은 비리라 하더라도 타격은 클 수밖에 없었다.

넷째 원인은 대통령 자신에게 있다. 대통령의 가벼운 언행과 일부 직설적인 표현은 대통령의 품격에 어울리지 않을 뿐더러 때로는 불필요한 시비까지 낳았다. 또 언론과의 잦은 대립은 종종 소모적인 정쟁으로 발전해 정부의 활력을 떨어뜨리고 민생 현안이 뒷전으로 밀려나는 결과를 초래했다.

마지막으로 실용주의 노선에 입각한 정책의 변화다. 盧대통령은 지지자들의 기대와는 달리 집권 후 외교안보 및 경제 분야 등에서 오른쪽으로 돌아서는 실용주의 노선을 택했다. 국익을 위해 불가피했던 이 선택은 그러나 결과적으로 반대자들을 돌려세우지는 못한 채 기존 지지세력의 반발만 초래하는 딜레마를 낳았다.

이상 다섯 가지 원인이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지역적.세대적.이념적 대결 구도와 상호 작용함으로써 노무현 정부는 이례적으로 집권 초기에 위기를 맞고 있다. 일각에서는 대통령이 물러나야 한다는 극언에 가까운 주장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선거로 뽑은 대통령이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물러나는 불상사가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문제는 정부가 국정주도력을 잃은 이런 상태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점이다. 대통령제 국가에서 대통령이 힘을 잃고 정부가 흔들리면 그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의 몫으로 남는다.

참여정부가 출범한 지 6개월도 안 된 지금, 아직은 격려하고 지켜보아야 할 때다. 특히 참여정부의 실용주의 노선을 살리고자 한다면 야당을 비롯한 보수세력이 도울 것은 돕고 비판할 것은 비판하는 합리적인 자세를 가져야 한다.

언젠가 공무원을 상대로 한 특강에서 盧대통령은 "마음에 안 들어도 대통령은 대통령"이라며 "도와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부탁해야 할 곳이 어디 공무원뿐이겠는가. 나라가 잘 되려면 온 국민의 협조가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통령도 변해야 한다.

모든 것을 언론 탓으로만 돌리지 말고 무엇이 어떻게 잘못되고 있는지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그런 다음 확고한 원칙 아래 언행을 무겁게 하며 언제 어디서나 일관된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한다. 이 어려운 시기에 우리 국민은 맏형처럼 믿음직하고 든든한 대통령 보기를 원한다.

양승목 서울대 교수.언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