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보조 안맞추면 동맹 큰 손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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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속된 위폐 공방=금융단속반을 이끌고 방한한 대니얼 글레이서 미 재무부 테러단체 자금 및 금융범죄 담당 부차관보는 23일 한국 정부에 "100달러 지폐 도안이 바뀐 직후인 1996년 북한이 거액을 들여 화폐 인쇄용 시변색 잉크를 다량 구입했다"며 "이는 북한이 정부 차원의 위폐를 만들었다는 증거"라고 주장했다. 시변색 잉크는 보는 각도에 따라 색깔이 변하는 특수 잉크다.

반면 한국 정부는 "시변색 잉크를 구입했다는 사실만으로 북한이 위조 달러를 만들었다고 단정할 수 있나"며 의문을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도 96년 500원권 도안을 바꿔 시변색 잉크가 필요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미국 측은 "경제난을 고려할 때 북한이 자국 화폐만을 찍기 위해 값비싼 시변색 잉크를 다량 구입했다는 것은 설득력이 부족하다"고 반박했다고 소식통이 전했다. 북한의 500원권 교체는 일종의 '알리바이 제시용'이라는 것이다. 결국 이날 브리핑은 미국의 주장에 한국이 의문을 표하며 끝난 것으로 전해졌다.

◆ 워싱턴 시각=헤리티지 재단 수석연구원 발비나 황은 "북한 위폐문제에서 한국이 미국과 보조를 맞추지 않으면 한.미동맹이 심각한 손상을 입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이 제시한 증거만으로 충분하며 한국이 그 이상을 요구한다면 미국과 동맹국이란 의식이 있는 것인지 의심할 수밖에 없다는 게 부시 행정부의 정서"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국무부의 한 소식통은 "한.미 간 이견이 심각하다는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으며 양국은 북한의 범죄행위를 막는 데 협조하는 관계"라고 선을 그었다.

워싱턴=강찬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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