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기심 영화천국] 촬영장 怪談의 진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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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촬영장에서 귀신을 봤다는 기사를 종종 본다. 최근 공포 영화가 많이 개봉하는데 이처럼 이상 현상이 일어난 사례는 없나.

A: 촬영장에서 귀신 소동이 벌어지면 다들 놀라는 와중에도 남몰래 웃는 사람이 있으니 바로 제작자다. 충무로에는 '귀신 소동=대박'이라는 속설이 있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불안한 흥행 때문에 일부러라도 귀신을 봤다고 떠들고 다닐 판국인데 알아서(?) 나타나주니 고마울 따름이다.

귀신이 자주 출몰하는 곳은 양수리에 있는 서울종합촬영소. 웬만한 영화는 세트 촬영을 위해 이 곳을 한 번씩 거쳐가게 되지만 모두 다 귀신과 만나는 행운(!)을 누리는 건 아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따져보면 이 속설은 속성이 그렇듯 반쯤은 맞고 반쯤은 빗나간다. 즉, 귀신을 봐도 망하는 영화가 있는가 하면, 귀신을 못 봐도 잘만 나가는 영화가 있는 것이다.

만약 이 속설이 근거가 있다면 거의 모든 공포 영화는 흥행에 성공해야 한다. 왜냐하면 거의 모든 공포 영화가 '촬영장 괴담'을 하나쯤은 갖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흔한 괴담은 제작진 중 한 명이 귀신으로 둔갑하는 것이다. 다음은 이달 초 개봉한 '여우계단'주연 박한별의 증언.

"촬영장이 폐교가 된 용산 수도여고였거든요. 폐교라니까 왠지 으스스해서 화장실도 혼자 못 가고 여럿이서 몰려다니고 했어요. 어느 날 건물 1층에서 제작부 사람을 만나 인사를 하고 2층으로 올라갔는데 그 사람이 거기 또 있는 거에요!" 그렇다면 1층에서 만난 그는 과연 누구? 그러나 '여우계단'제작진에 따르면 촬영장에서 정작 가장 무서웠던 건 길고 검은 머리를 풀어헤치고 다닌 박한별이었다나.

14일 개봉하는 '거울 속으로'도 비슷한 괴담을 들려준다. 장소는 문제의 양수리 세트장. 제작부 중 한 명이 아파서 새벽에 급히 병원을 가게 됐다. 다른 제작부 직원인 A와 B가 그를 차에 태워 데리고 갔는데 얼마 후 (병원에 있어야 할) A가 자고 있는 사람들을 깨우며 "아침 식사가 다 됐으니 일어나라"고 말했다는 게 아닌가(으흐흐…).

이밖에도 충무로에 떠도는 '기묘한 이야기'는 무궁무진하다. 지난주 말 개봉한 '4인용 식탁'의 박신양은 시나리오를 읽고 나서 첫 일주일은 악몽 때문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단다. 갓난아기 3명을 포함해 10명 가까이 죽어나가는 영화 내용 탓이었다.

'장화, 홍련'은 새 촬영 장비가 이유 없이 고장나는 통에 애를 먹었다고 한다. 앞으로 공포 영화 주연 배우나 스태프는 담력 테스트를 통해 뽑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용감한 자만이 흥행을 얻는다"는 속설과 더불어.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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