禪讓 -선양-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516호 29면

“예로부터 (왕조 교체는) 선양(禪讓·왕위를 세습하지 않고 덕이 있는 사람에게 물려줌)과 정벌해 죽이는 것(征誅·정주) 두 경우만 있었다. 권신(權臣)이 나라를 빼앗으면 곧 찬시(簒弑)라 불러 항상 서로 경계해 감히 저지르지 않았다.


왕망(王莽·전한을 찬탈한 권신)은 어쩔 수 없이 주공(周公)이 성왕(成王)을 보좌했다는 핑계로 섭정한 뒤 제위에 올랐지만 주공은 천하를 차지하지 않았다. 조조(曹操)의 위(魏)나라에 이르러 한나라 천하를 옮기려했지만 찬시라 불리지 않고자 거짓 선양으로 나라를 빼앗았다.


일단 선례가 생기자 진(晉)·송(宋)·제(齊)·양(梁)·북제(北齊)·후주(後周)·진(陳)·수(隨)가 모두 이를 모방했다. … 조조는 한나라에 공을 세워 이미 구석(九錫·천자가 특별한 공로를 세운 신하에게 내리는 아홉 특혜)을 더하고, 20개 군을 봉토로 받고, 위왕 작위에 천자의 깃발을 세웠으며 황제급 경호를 받았지만 스스로 감히 황제라 칭하지 못했다. 아들 조비(曹丕)에 이르러 비로소 선대(禪代·선양을 통한 왕조교체)를 행했다.”


청(淸) 고증학자 조익(趙翼)의 역사 논술서 『이십이사차기(二十二史箚記)』 ‘선대(禪代)’편의 앞부분이다. 수많은 중국의 왕조 교체 때는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역사는 그럼에도 요(堯)·순(舜)·우(禹)처럼 능력 있는 인물에 승계한 ‘선대’라 적었다. 조익은 이를 팩트체킹했다. 만주족 청조까지 에둘러 겨냥한 중국 특색의 권력 비판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주 취임했다. 1776년 미합중국 독립 후 45대 대통령이다. 미국을 넘본다는 중국은 주(周) 공화(共和) 원년인 기원전 841년부터만 따져도 무려 2858년이다. 역사는 길지만 황제 45명의 왕조는 없었다.


241살인 미국 나이를 넘긴 왕조는 당(唐· 289년)·명(明·276년)·청(267년) 셋에 불과했다. 한(漢)과 송(宋)은 단절이 있었다. 중국이 서둘러 권력 교체 ‘선양’ 모델을 확립해야 하는 이유다.


예순 아홉의 대한민국도 대선이 임박했다. 설을 맞아 순조로운 ‘선양’을 기원해본다. 만사여의(萬事如意).


신경진베이징 특파원shin.kyungjin@joongang.co.kr

Copyright by JoongAng Ilbo Co., Ltd. All Rights Reserved. RSS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