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기의 反 금병매] (111)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11면

왕노파가 부채 동강들을 손에 든 채 금련과 서문경을 번갈아 쳐다보면서 조심스레 말했다.

"두 사람 오랜만에 만나서 이렇게 싸우고만 있을 거요? 벌써 한나절이 다 지나가고 있어요. 진짜로 해야 할 일은 따로 있잖아요."

"진짜로 할 일이라니요?"

금련은 아직도 뾰로통한 표정을 풀지 않고 있었다.

"이 부채 동강들처럼 이렇게…"

왕노파가 두 동강 난 부채를 하나로 합해 보이며 비식 웃음을 흘렸다. 서문경은 왕노파가 무슨 말을 하는지 금방 알아차리고 입을 헤벌렸다.

"할머니는 불난 집에 부채질을 하고 있군요. 할머니는 이만 돌아가세요."

"부인이 서문대인을 데리고 오라고 해서 기껏 모시고 왔더니만 오히려 나를 구박하네. 하긴 내가 빨리 돌아가야 이게 이루어질 테니까."

왕노파가 두 동강이 합해진 부채를 또 가리키며 시부렁거렸다.

"빨리 부채를 가지고 가서 붙여서 쓰든지 삶아 먹든지 마음대로 하세요. 부채 주인이 그러라고 했잖아요."

"네, 네. 알겠어요. 곧 나갑니다. 부엌에 가서 영아 음식 장만하는 거 도와주고 나는 빨랑빨랑 꺼질게요."

왕노파가 부채를 양손에 집어들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서문경이 술이 조금 깨는지 사뭇 다정한 목소리로 금련을 달랬다.

"당신 이제 화가 좀 풀렸소? 당신이 내 생일 축하해준다고 해서 이렇게 달려왔는데 무안만 주고 있구려."

금련이 길게 한숨을 쉬다 말고 두 눈 가득히 눈물을 글썽였다. 그 눈물을 보자 서문경은 그동안 금련에게 무심했던 것을 얼핏 반성하였다. 하긴 아무리 아름다운 여자라 하더라도 남자가 한번 그 몸을 알아버리고 나면 이전보다는 훨씬 그 여자에 대한 관심이 식는 법이었다. 아름다운 여자는 그 여자를 안아보기까지의 과정이 그야말로 설레고 긴장되고 황홀한 순간순간들이 아닌가.

"당신 정말 미워요. 아무리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고 하더라도 어찌 그렇게 나에게 무심할 수 있어요? 새것을 좇느라 옛것을 버리는(怜新棄舊) 격인가요? 내가 벌써 옛것이 된 건가요?"

"당신이 옛것이라니요? 아직 내 부인도 되지 않았는데. 당신은 내 부인으로 들어와도 영원히 새것이오. 얼마 전에 데리고 온 여자는 내 부인이 되자마자 옛것이 되고 말았소."

그 말을 듣자 금련의 얼굴에는 다시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새로 얻은 부인 어때요? 예뻐요? 밤에 잘 해줘요?"

"밤에 잘 해주면 벌써 옛것이 되었다 하겠소? 이전 남편이랑 어떻게 잠자리를 했는지 영 밤일이 서투르단 말이오. 그래서 내가 몇 수 가르쳐주니 조금 깨우치는 것 같기도 한데 워낙 숙맥이라. 살림은 그런대로 착실하게 잘 하겠더구먼. 내가 그 여자를 데리고 온 이유도 거기에 있었고."

"살림을 그 여자에게 다 맡기겠다는 건가요?"

금련이 은근히 경계하는 투로 물었다.

"다 맡기는 것은 아니고 자기 분량만 맡도록 해야지. 당신이 해주는 생일 축하 빨리 받고 싶소. 그리고 당신을 얼른 안고 싶소."

"아직 아침인데요? 아침부터 나를 안으시려고요? 호호."

"원래 아침 정사가 꿀맛이라고 했소. 사실 몸들이 새로워진 아침에 남녀가 합해야 하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