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 적고 장래성 없는 직장 가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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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월급이 적은 직장을 선택하라.''장래성이 전혀 없다고 생각하는 곳으로 가라.' 경남 거창고를 방문하는 사람들은 이 학교 강당 뒤편에 걸려 있는 '직업선택의 십계(十戒)'라는 유리 액자를 보고 고개를 갸웃거린다. 상식으로는 이해가 안 되는 내용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극심한 취업난 속에 조금이라도 나은 직장에 들어가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하는 요즘의 분위기를 감안하면 현실성이라곤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내용들이다. 학생들에게 이렇게 가르치는 학교는 거창고 외에는 전국 어디에도 없다. 그러나 거창고 졸업생을 비롯한 학생들은 이 십계를 금과옥조(金科玉條)로 삼고 있다.

이 학교 유상철 연구부장은 "중요한 것은 글귀가 아니라 그 속에 든 정신"이라며 "나 자신이 소중한 만큼 남도 소중하고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는 진리를 학생들이 몸속에 익혀 나가도록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른 사람 위에 군림하는 사람이 되기보다는 남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이 되라는 것이다.

직업 선택의 10계는 4대 교장을 지낸 전성은(전 교육혁신위원장) 현 교장(6대)과 도재은(5대 교장)씨가 1980년대 초 만들었다. 전 교장은 "'무엇이 되느냐'보다 '어떻게 사느냐'를 가르치기 위해 10계명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학교 측은 이 같은 정신이 학생들의 진학률에 적잖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거창고는 81~2003년 22년간 4874명의 졸업생 중 90%인 4386명이 4년제 대학에 진학했다. 2004년에도 졸업생의 90% 이상이 대학에 진학했다.

거창=김관종 기자

<거창고 직업선택 10계명>

1. 월급이 적은 쪽을 택하라.

2. 내가 원하는 곳이 아니라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을 택하라.

3. 승진의 기회가 거의 없는 곳을 택하라.

4. 모든 조건이 갖추어진 곳을 피하고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황무지를 택하라.

5. 앞을 다투어 모여드는 곳을 절대 가지 마라. 아무도 가지 않는 곳을 가라.

6. 장래성이 없다고 생각되는 곳으로 가라.

7. 사회적 존경을 바랄 수 없는 곳으로 가라.

8. 한가운데가 아니라 가장자리로 가라.

9. 부모나 아내가 결사반대를 하는 곳이면 틀림없다. 의심치 말고 가라.

10. 왕관이 아니라 단두대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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