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없는 삶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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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나치 독일의 부총통「루돌프·헤스」는 자연사 아닌 자살을 한것같다. 46년을 두고 독방에서 감옥생활을 했으면 그런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93세-. 여한은 없을 것이다.
「헤스」는 서베를린의 슈판다우감옥에서 오로지 혼자 갇혀서 생활한 세월만해도 20년이 넘는다. 대화상대라고는 하늘과 초목과 새(조)들. 그는 새들이 가까이 날아오면 독백처럼 이런 말을 했었다고 한다.
『나는 다시 태어나도 같은 길을 걸을 것이다. 「히틀러」의 오른팔로 일할 기회를 결코 놓치지 않을 것이다. 뿐더러 또다시 슈판다우 감옥에서 일생을 마치게 될 것이다.』
그는 「나치 독일」이 기반을 닦는데「히틀러」의 오른팔 구실을 했다. 그것을 후회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나치 독일의 군화에 짓밟혔던 유럽 사람들이 그 말을 들으면 분노와 증오를 느낄지 모른다. 그러나 지하의「히틀러」는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을 것이다.
후회없는 삶이란 결국 자기자신에게 충실한 삶이란 뜻이다.
세상을 그처럼 신념과 결의와 각오위에서 살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그는 성공한 사람이다.
인물은 다르지만「벤저민·프랭클린」의 자서전에도 그런 얘기가 있다. 세상에 다시 태어나도 그는 전생과 똑같은 삶을 살고 싶다고 했다. 그만한 인물이 되면 후회할 것도 없고, 더 많은 것을 바랄 것도 없을 것이다.
한결같은 확신과 철학과 자신의 주의주장을 지키며 산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우리는 별의별 험한 세상을 다보았지만「나」를 지키며 사는 사람들은 정말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3선만이 구국이다』고 외치던 사람이 『유신만이 살길이다』고 외치는 것까지는 눈감아 줄수 있다. 똑같은 입을 가진 사람이 한때는『내각책임제만이 민주화』라고 외치다가 요즘은 대통령책임제와 「민주화」의 기수인양 정치무대의 전면에서 어깨를 펴고 다니는 사람도 있다.
카멜레온처럼 세상을 사는 것은 그 나름의 큰 재주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러자면 그 자신의 심신은 얼마나 피곤할 것이며, 그를 보는 국민들은 또 얼마나 곤혹스럽고 피곤한가.
「헤스」의 말이 웅변처럼 들리는 것은 부질없는 감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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