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전략적 유연성' 합의 이후 안보과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0면

한.미가 주한미군의 한반도 이외 지역 투입을 허용하는 '전략적 유연성'에 합의했다. 다만 '한국인의 의지에 반해 동북아의 지역갈등에 개입하면 안 된다'는 한국의 입장을 미국이 존중키로 했다. 이번 합의는 양국의 이해가 절충된 것이다. 우리로선 '전략적 유연성' 자체를 거부할 경우 주한미군의 추가 감축이 우려됐다. 미국도 한국과의 동맹이 주는 국익을 감안할 때 미군의 동북아 파병에 대한 한국의 우려를 더 이상 무시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동안 한.미 갈등을 유발한 핵심 현안 중 하나가 해결된 것은 일단 다행스럽다. 그러나 대북 억지력으로만 기능해 왔던 주한미군이 한반도를 들락날락하게 된 것은 우리의 안보환경이 근원적으로 바뀐다는 의미다. 이런 점에서 향후 만만치 않은 안보상의 도전이 예상된다.

우선 중국.북한 등과의 갈등 여부다. 물론 '전략적 유연성'이 동북아에 적용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고 본다. 그러나 국가 간 분쟁 가능성이 상존하는 게 국제정치의 현실이다. 점차 고조되는 중.일 갈등이 어떤 양상을 초래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과거 한.미가 팀스피리트 훈련만 해도 준전시상태를 선포했을 정도로 주한미군의 움직임에 민감했던 북한으로서도 이번 합의는 꺼림칙할 것이다. 따라서 이들 국가와의 신뢰를 구축해 예상되는 갈등을 사전에 방지하려는 외교적 노력이 요구된다. 첨단 전력을 갖춘 주한미군이 역외(域外) 분쟁에 투입될 경우 생겨날 대북 억지력 공백에 대한 대응책도 강구돼야 한다.

'전략적 유연성'을 한.미 상호방위조약과 어떻게 조율할지도 과제다. 이 조약은 일방이 공격받았을 경우 공동 대응한다는 게 핵심이다. 한반도 밖에서 미국의 선제공격까지 포함된 군사전략을 위해 주한미군을 이용할 수 있는 근거에 대해선 양국 간에 이견이 있다. 전시작전권 이양, 방위비 분담 등도 논란거리로 비화될 수 있다. 한.미는 이런 민감한 사안들이 또 다른 갈등 요인이 되지 않도록 호양정신을 발휘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