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북 문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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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몰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곳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뷔인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짚버개를 돋아 고이시는 굿/-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이 시는 1927년 잡지『조선지광』에 실린 정지용의『향수』5연중 첫 두연이다.
실개천이 흐르는 고향의 들판에서 한낮의 황소가 게으름을 피우는 정경도 그렇지만, 늙은 아버지가 겨울밤 질화로 곁에서 연신 곰방대를 털고 있는 모습이 그야말로 눈에 보일듯 묘사되고있다. 누구나 이 시를 대하면 문득 고향으로 달려가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되리라.
문공부는 최근 6·25를 전후하여 월북한 문화예술인은 38명, 납북된 사람은 5명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대부분 북한에서 사망했거나 절필을 했다. 자유가 없는 땅에서 작품활동을 할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들 납북문인들의 일부작품이「6·29선언」을 계기로 해금될 모양이다. 문인협회는 83년에 이어 엊그제 또 모임을 갖고 납북·월북작가의 작품중 우리 문학사에 뚜렷한 발자취를 남긴「순수한 작품」은 물어줘야 한다는데 의견을 모았다.
사실 분단 4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오늘, 그들이 자지회를『했는가, 또는 납북됐는가를 가리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설사 일시적인 판단착으로 월북했다 하더라도 그곳의 실상을 알고 난후 작품활동을 중단한 사람도 적지 않기 때문에 그들의 행적을 일일이 파악하기는 어렵다.
더구나 30년대 대표적 시인인 정지용·김기림같은 이의 가족들은 지난 85년「납북」을 증명하는 자료와 증언을 토대로 관계당국에 청원서를 낸바도 있다. 그뿐 아니라 이들의 작품은 이미 영인본 등으로 나와 문학도들의 연구자료로 활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민족의 화합을 다지는 민주화의 길목에서 우리는 뜻깊은 광복 42주년을 맞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민족문학도 잃어버린「미아」를 되찾아 더욱 살찌게 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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