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주한미군 분쟁지역 파견' 합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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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 외무장관회담에서는 이 같은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인정하기로 합의했다. 지구촌 분쟁이나 테러 등 비상 사태가 발생하면 어떤 곳에라도 주한미군을 급파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미국의 의도대로라면 동북아 질서엔 큰 변화가 예상된다. 주한미군의 활동 반경이 넓어지고 역할이 확대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미국은 주한미군과 주일미군의 연계를 강화하고 있다. 중국이 강 건너 불로만 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한.미동맹이 한반도 방어 중심의 국지 동맹에서 광역 동맹으로 바뀔 가능성도 없지 않다. 한국 입장에선 의사와 관계없이 분쟁에 휘말릴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정부는 전략적 유연성에 소극적 입장이었다. 관련 회의가 지난해 2월부터 12차례 있었지만 양국은 충돌만 거듭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해 3월 공군사관학교 졸업식에서 "우리의 의지와 관계없이 동북아 분쟁에 휘말리는 일은 없을 것이며, 이는 어떤 경우에도 양보할 수 없는 확고한 일"이라고 단언했다. 이렇게 한.미 갈등이 가장 컸던 최대 이슈가 19일 합의된 것이다. 다만 "한국민의 의지와 관계없이 동북아지역 분쟁에 개입되는 일은 없을 것"이란 전제를 달았다.

6자회담 재개를 위해 한.미 간 이견을 줄여가자는 공감대가 합의 배경이라고 한다. 막대한 예산을 들여 병력을 배치해 놓고 분쟁지역에 파병할 수 없다면 차라리 주둔군을 철수하는 게 낫다는 미국 내 여론을 우리 정부가 마냥 무시할 수도 없다. 미국의 군사변환(military transformation) 전략이 대세가 된 마당에 주한미군 예외론만 주장하기도 어렵다. 결국 안보 공백을 피하기 위한 고육지책이라는 얘기다.

이번 협의에선 주한미군을 분쟁지역에 파병할 때 어떤 기준과 판단에 따라, 어떤 협의 채널을 통해 결정할지를 여백으로 남겨 뒀다. 그래서 구체안 마련에는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동북아에서 분쟁 상황이 발생하면 양국이 충분한 대화를 거쳐 상황별로 신속하고 긴밀하게 대처해 나간다는 원칙에만 공감대가 이뤄졌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미국이 주한미군을 다른 지역으로 보낼 때 제동을 걸 만한 안전장치가 없어진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최상연 기자

◆ 전략적 유연성=비상사태가 발생하면 주한미군을 포함한 전 세계 주둔 미군을 특정 지역의 '붙박이 군대'가 아닌 기동성과 신속성을 갖춘 기동타격군으로 바꾸겠다는 것. 미 국방부가 추진하는 글로벌 군사전략이다.

*** 바로잡습니다

1월 21일자 1면과 5면 반기문 외교부 장관과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이 19일 워싱턴에서 회담한 것을 다룬 기사.표에서 회담 명칭을 '한.미 외무장관 회담''첫 고위 전략대화''한.미 외교장관 전략회담' 등으로 달리 표기했으나 공식 명칭은 '한.미 장관급 전략대화'가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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