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너무 나간 인권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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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경제계도 17일 인권위의 국가인권정책 기본계획(NAP) 권고안에 대해 균형 감각이 결여돼 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이날 경제 5단체의 성명서는 평소와 달리 한두 장짜리가 아니라 무려 6장에 달할 정도로 방대했다. 김영배 경총 상임 부회장은 "(재계가) 말 안 하고 참는다고 봐주는 게 아니라 오히려 무시만 하더라"고 주장했다.

인권위는 이 같은 재계 반응에 대해 19일 조목조목 반박하는 설명자료를 냈다. 인권위는 ▶3년 반 동안 10여 차례의 토론회 등을 열어 사회적 의견 수렴을 거쳤고▶노동권.교육권 등의 사회권도 인권위 영역이며▶헌법재판소.대법원 등 사법기관은 주로 국내법의 틀 내에서 인권문제를 보지만 인권위는 국내법적 근거 외에 국제인권법이라는 틀도 있어 양자의 결론이 달라지는 게 자연스럽다고 주장했다.

소수자와 사회적 약자의 인권 보호는 물론 인권위가 할 일이다. 그러나 인권위가 기업의 자율성이나 경제원칙을 심각하게 훼손할 경우 어렵사리 탄생한 인권위의 입지를 스스로 좁힐 수 있다. 대기업 비정규직 근로자가 중소기업의 정규직 근로자보다 높은 임금을 받고 있는 현실에서 비정규직 문제를 과연 인권이라는 하나의 잣대로 풀 수 있을까.

현재 일자리를 가진 근로자들의 인권만을 강조하다가 정작 노동시장 밖에 있는 실업자들의 일자리와 생존권을 도외시하는 것은 아닐까. 인권 신장을 위해 지금 가장 시급한 과제는 '일자리 만들기'라는 재계의 주장을 과거 개발시대의 경제우선 논리로만 몰아붙일 수 있을까. 한번 고민해볼 문제다.

이왕이면 인권위가 불법.폭력 시위로 희생당한 경찰과 그 부모의 인권과, 나아가 집회에 따른 교통마비로 피해를 본 상인과 시민의 자그마한 권리까지 넉넉하게 아울렀으면 좋겠다. 요즘에는 오히려 이들이 더 '소수자'인 것 같다.

서경호 산업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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