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람] '한국판 브루킹스硏' 꼭 만들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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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1999년 6월 이윤재(李允宰.53 현 코레이 대표) 당시 청와대 재정경제비서관이 "제2의 인생을 살고 싶다"며 명예퇴직을 신청하자 과천 관가는 한동안 술렁거렸다. 경제기획원과 재정경제원에서 요직을 두루 거친 정통 경제관료로 '숨만 쉬고 있으면 장관을 할 사람'으로 통했던 그의 돌연한 사표 제출에 많은 선후배 관료들은 '충격'을 받았다.

그 뒤 국내 최대의 합동법률사무소인 김&장에서 3년 반 동안 고문직을 맡았던 李대표는 최근 또 다른 도전에 나섰다. 사촌 형인 이헌재(李憲宰) 전 재경부 장관과 뜻을 합쳐 2001년에 만든 코레이(KorEI)에 전념하기 위해 지난달 김&장 고문직을 물러난 것이다.

지난달 말 서울 세종로 광화문빌딩에 있는 코레이 대표실에서 그를 만났다. 과천을 떠난 이후 언론과의 인터뷰를 피해온 그였던 만큼 먼저 관료조직을 떠난 이유를 물었다.

"90년에 경제기획원 예산총괄과장을 했어요. 그때 국회의원은 물론 장.차관 등 권력있는 사람들이 모두 부탁을 해왔습니다. 권력을 탐닉하거나 인생의 목표로 삼으면 큰일나겠다는 생각이 듭디다."

그는 그때부터 '제2의 인생'을 준비했다고 했다. 돌연 자신이 사표를 내면 아내가 충격을 받을지 몰라 틈틈이 '이모작 인생'에 관해 대화를 나누었다고 말했다. 그는 70세까지 활동을 한다고 할 때, 30년 관료생활을 50대 초반에 접고 이후에는 새로운 삶을 살고 싶었고, 제2의 인생은 스스로 개척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김&장을 떠난 이유도 물었다.

"향후 몇년에 걸쳐 최고경영자(CEO)인 제가 모든 것을 걸고 전념해야만 코레이가 충실한 싱크탱크(think-tank)로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코레이를 '한국판 브루킹스 연구소'로 만들겠다고 했다. 그는 "코레이는 재정이나 활동 기조에 있어 정부나 기업 또는 특정 정파나 사회 세력에 의존하지도, 대변하지도 않으려 한다"고 말했다.

그는 "서두르지 않겠다"고 했다. 기부문화가 정착돼 있지 않은 한국에서 재정 독립을 추구하면서 연구를 하기 위해선 천천히 가더라도 확실하게 연구실적을 쌓아가겠다는 것이다.

그는 또 기업들이 구조조정 등을 하면서 고민에 빠졌을 때 전문가들이 컨설팅과 조언을 해주고 돈을 벌어 재원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코레이가 중점을 두는 분야가 '기업(起業)'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엔터프라이즈(enterprise)란 영어 단어는 새로운 일을 세우고 일으키는 진취성을 의미한다"면서 "코레이는 기업(起業)이라는 관점에서 정부의 경제 정책을 바라본다"고 말했다.

그가 관료조직을 떠난 지 4년이 지났다. 밖에서 바라본 관료 조직은 어떤 것일까.

"관료들은 지적 능력이나 국가관.준법정신 등에서 민간조직보다 뛰어납니다. 문제는 우수한 인력들을 제대로 경영.관리하는 시스템이 이미 오래 전에 고장난 채 방치돼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관료조직의 전문성과 활력이 떨어지고 국민의 신뢰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그는 "아직도 낡은 공직관이 몸에 배어 시대의 변화를 제대로 읽지 못하거나, 달라지지 않고 있는 관료들이 많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나이를 먹으면 좀 더 정직해지고 정의로워질 줄 알았는데 그렇게 살기가 정말 힘들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면서 "독서와 사색을 통해 타인에 대한 이해를 더 잘 할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보람"이라고 말했다.

"장.차관이 되거나 좋은 보직에 앉는 것이 이제까지의 개인적 목표였다면 빨리 버리기 바랍니다." 李대표는 후배 관료에 대한 당부의 말로 인터뷰를 끝냈다.

글=김동섭, 사진=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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