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있는아침] ‘낮은 목소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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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낮은 목소리’ - 장석남(1965∼ )

더 작은 목소리로
더 낮은 목소리로, 안 들려
더 작은 목소리로, 안들려, 들리질 않아
더 작은 목소리로 말해줘
라일락 같은 소리로
모래 같은 소리로
풀잎으로 풀잎으로
모래로 모래로
바가지로 바가지로
숟가락으로 말해줘
더 작은 목소리로 말해줘
내 사랑, 더 낮은 소리로 말해줘
나의 귀는 좁고
나의 감정은 좁고
나의 꿈은 옹색해
큰 소리는 들리지 않는데
너의 목소린 너무 크고 크다
더더 낮고 작은 목소리로 들려줘
저 폭포와 같은 소리로,
천둥으로,
그 소리로


사람이 태어날 때 입 안에 도끼를 가지고 나온다 말한 이 누구인가. 옆집 부부가 밤새 싸우는 소리를 듣느라 잠을 설쳤다. 조곤조곤 시작되더니 맞받아치고 막말에 큰소리다. 아파트 한 채가 쩌렁쩌렁 운다. 내 집 아파트 외벽은 해도 해도 너무 방음이 안 된다. 아이들이 운다. 나도 옆집 아이처럼 부모들의 고성 사이에 고통스럽게 매달린 적이 있었으니. 사랑이여, 소라나 모시조개로 말해줘. 아가의 조막만한 손으로 말해줘. 살얼음으로, 반짝이는 빛으로 말해줘. <문태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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