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도청 절대 용납 못한다고 장관이 신호 보내야 하는데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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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을 상대로 혐의를 암시하는 말을 하는 것은 등 뒤에서 총을 쏘는 것과 마찬가지다."

현직 평검사가 최근 논란이 된 천정배 법무부 장관의 발언을 조목조목 반박하는 글을 검찰 내부통신망에 올려 파장이 일고 있다.

대검찰청에서 연구관으로 재직 중인 금태섭(39.1992년 사법시험 34회 합격) 검사는 16일 오후 '법무부 장관의 발언에 대한 단상'이라는 제목으로 A4 용지 6장 분량의 글을 내부통신망에 띄웠다.

금 검사는 "사건에 대해 권한을 가진 법률가는 개인적인 의견을 외부에 표현해서는 안 된다"며 불법도청 사건에 대해 개인적인 의견을 밝힌 천 장관을 비판했다.

천 장관은 12일 법무부 출입기자와의 저녁 자리에서 불법도청 사건과 검사의 이른바 '떡값' 수수설 등과 관련, "(관련자들이)죄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혐의를 입증할 수 없다는 것"이라는 등의 발언을 해 물의를 빚었다.

금 검사는 "공직자는 사건에 관한 많은 정보를 갖고 있기 때문에 국민이 사실로 받아들일 위험성이 크다"며 "개인적인 의견 표현을 조심해야 하는 근거는 진실 발견을 어렵게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법무부 장관이나 검사가 결론에 대해 공식적인 처리 결과와 다른 개인적인 견해를, 그것도 언론인들에게 표명하는 것은 일반인들의 경우와는 전혀 다르게 보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법무부 장관께서는 '준 사람도 아니라고 하고, 받은 사람도 아니라고 하는 상황에서 현금이 오간 것을 어떻게 밝혀내 처벌할 수 있느냐'며 입증의 어려움을 토로했다"며 "반대로 해석해 보면 실제로 검사들이 돈을 받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사실을 입증하는 것은 그야말로 불가능하다"고도 했다.

금 검사는 "(떡값을 받았다고 거론된)당사자들로서는 평생 살아온 과정을 부정당하는 것 같은 심정이 들 것"이라며 천 장관의 발언으로 억울한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검찰의 도청사건 수사와 관련, "(불법 도청 내용이)사실인 듯한 인상을 주는 (법무부 장관의)말은 애초에 불법 행위를 저지른 자들의 목적달성을 도와줄 위험성이 있다"며 "법질서를 책임진 법무부 장관이라면 국가기관의 불법도청을 절대 용납할 수 없고, 이를 통한 어떤 이익도 얻지 못한다는 강한 신호를 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불법도청 내용을 수사하지 않아) 사건 수사 한 건을 포기하더라도 국가기관의 불법도청을 근절시킬 수 있다면 검찰이 우리나라를 위해 공헌한 가장 중요한 업적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금 검사는 "불법 도청은 사람의 약점을 잡아 영향력을 행사하거나 정치적 반대세력에 타격을 가하기 위한 저열한 행위"라며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인권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그 침해를 막는 것, 그것이야말로 '헌법학의 기본'이고 법무부와 검찰의 존재이유가 아니겠는가"라며 글을 맺었다.

금 검사의 글은 하루 만인 17일 현재 1400여 건 넘는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다.

김종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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