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 마지막 비극이길-이한열군의 죽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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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우리 시대의 고통과 슬픔과 절망을 한 몸에 끌어안았던 이한열군이 끝내 숨지고 말았다. 2O세의 젊디젊은 나이에 생명의 불꽃을 큰 뜻에 불사른 그의 죽음 앞에 애통과 비장함을 함께 느끼게 된다.
그가 다치던 날, 그 처절했던 모습을 신문사진으로 보며 우리 국민들은 얼마나 가슴아파하고 또 분통이 터졌던가. 끝도 없어 보이는 질곡과 몸부림 속에 언제까지 이런 날을 보내야 하며 젊은이들은 또 언제까지 좇고 좇기며 울부짖어야 하는가, 우리는 땅을 치고 하늘을 우러르며 절규하고 싶었다.
사진으로 보는 이군은 그럴수없이 준수하고 온순하고 듬직하게 보인다. 그 모습에서 아마 누구나 형제같은 따뜻함과 내 아들같은 뿌듯함을 느꼈을 것이다.
이런 젊은이들이 길거리로 뛰어나와 현실을 개탄하고 정치를 비판하며, 새 시대를 요구했던 상황에 우리 모두는 뼈를 깎는 아픔과 함께 가슴을 찢는 자기 성찰이 있어야 할 것이다.
우리 사회는 젊은이들의 시위를 비판하고 타이르기는 했어도, 그들의 요구에 얼마나 귀를 기울였으며 자기 몫의 노력은 또 얼마나 했는가. 뭇 정치인들은 시니시즘의 눈빛으로, 혹은 사익의 타산으로 먼발치서 이들을 방관하고 있지는 않았는가.
이한열군을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은 최루탄의 파편에 앞서 이 시대를 이끌어 가는 모든 사람들의 책임과 독선과 아집에서 비롯된 것은 아닌가.
이런 자기반생 없이는 이군의 죽음은 무위하고, 그의 비극은 마지막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때마침 우리 사회는 민주화의 신선한 바람 속에서 이제 새 시대의 기운을 보고 있다. 그러나 아직은 그 무엇도 속단할 수 없다. 민주화의 소리는 높아도 어느 길로, 어떤 걸음으로, 어떻게 가야하는지 우리는 종잡지 못하고 있다.
지금은 이군의 죽음을 슬퍼하고 통탄만 하고 있기보다는 그 희생을 값진 교훈으로 삼기위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까를 냉철히 생각할 때다. 그것만이 이군의 죽음을 길이 기억하는 길이고, 이군과 그의 부모 형제들을 위로할 수 있는 길이다.
우리의 민주화는 절규와 희생만으로는 성취될 수 없다. 어쩌면 민주화를 위한 외침과 아픔은 영원한 과제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의 노력과 성심 성의가 그치지 않는 한 민주주의는 성장하고 끊임없이 꽃을 피울 것이다.
이군의 죽음 앞에 우리는 그런 결의와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 이때 우리가 다시금 길을 잘못 들거나 주저하거나 좌절하면 언제 또 다른 이한열군의 비극이 반복될지 모른다. 그런 비극은 이군의 희생으로 끝이 나야한다.
우리는 이 기회에 경찰의 무분별한 최루탄 남발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미 인명의 살상을 보고 있는 마당에 경찰은 제도적으로도 자제노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아울러 이번 이군의 죽음에 대한 문책도 이루어져야 그런 노력은 실효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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