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홍콩서 "만세" 부를 일인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6면

한국인 시위대는 12일 "8명이 무혐의로 풀려난 것은 당연하며 나머지 3명도 무죄"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은 낯선 이국 땅에서 일주일 동안 단식투쟁까지 하면서 고초를 겪었다. 가족들도 마음이 아팠을 것이다. 이들 중 단순시위 가담자는 더더욱 억울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사정을 모두 감안해도 이들이 승리를 자축할 상황은 아닌 것 같다. 지난해 12월 17일로 돌아가 보자. 당시 홍콩 도심에선 한국인 시위대가 홍콩 경찰 허가 없이 시위를 벌이면서 이를 제지하는 경찰들에게 죽봉과 각목을 휘둘렀다. 중심가는 10여 시간 동안 무정부 상태였고, 한국인 시위대 1000여 명이 연행됐다. 퇴근길의 홍콩 시민들은 50여 년 만에 가장 큰 불편을 겪었다.

WTO 각료회의 시작 전 시위대 집행부가 두 차례나 평화시위를 다짐했던 게 무색했다. 이후 홍콩 시민들은 "한류(韓流)가 폭류(暴流)가 됐다"고 비꼬았다. 홍콩에 사는 한인들조차 "폭력시위 주동자를 법에 따라 엄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홍콩 당국이 고심 끝에 공소 취하 결정을 내린 것은 이들의 무죄를 믿었기 때문이 아니다. 과거 50여 년간 폭력시위를 접해 보지 못해 시위 현장에서 충분한 증거를 확보치 못했기 때문이다. 또 홍콩 내 민주파 정당.단체들이 이번 사태를 '행정장관 직선제' 관철 운동에 연계할 움직임을 보인 점도 작용했다. 그래서 홍콩 언론들은 12일 "이번 공소 취하 조치로 홍콩의 법 질서가 무너졌다"며 당국의 '무죄 석방'을 맹비난했다. 한국인 시위대가 홍콩 사회에 남긴 '과격.폭력시위'의 기억은 오랫동안 남아 있을 것 같다.

최형규 홍콩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