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詩)가 있는 아침 ] - '간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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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안도현(1961~ ) '간격' 전문

숲을 멀리서 바라보고 있을 때는 몰랐다

나무와 나무가 모여

어깨와 어깨를 대고

숲을 이루는 줄 알았다

나무와 나무 사이

넓거나 좁은 간격이 있다는 걸

생각하지 못했다

벌어질 대로 최대한 벌어진,

한데 붙으면 도저히 안 되는,

기어이 떨어져 서 있어야 하는,

나무와 나무 사이

그 간격과 간격이 모여

울울창창 숲을 이룬다는 것을

산불이 휩쓸고 지나간

숲에 들어가 보고서야 알았다



벌판에 고슴도치들이 서 있었다. 너무 추워 체온을 나누려고 다가서면 가시가 서로를 쑤시고 떨어지면 찬바람이 스며들었다. 결국 그들은 너무 멀어 춥지도 않고 너무 가까워 쑤시지도 않는 최후의 거리를 발견했다. 그것을 쇼펜하우어는 인간과 인간 사이의 예양 (禮讓)이라고 했다. 우정이나 사랑이나 그것을 유지하는 것은 맹목적인 밀착이 아니라 그 거리(距離)이다. 그릇을 쓸모있게 하는 것이 빈 공간이듯이….

문정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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