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길언의『그믐밤의 제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그믐밤의 제의』(소설문학 6월호) 는 제주지방에서 떠도는<장사 정서방의 전설>과 오늘의 우리 사회에서 새로운 세계에 대한 갈증을 남달리 짙게 느끼는 인물들의 경우에 관한 이야기를 잘 봉합해 놓은 것이다. 작품에서는 용당개 장수서 전세로 구체화 되고 있는 이 전설은 특히 답답하고 암울한 시대에는 한번 쯤 들어 보았음직한 <아기장사설화>의 범주에 노함되는 것이다.
평소 어민들을 무자비하게 착취하던 용당개 관원들이 강서방 둘째 아들이 초인적인 괴력을 기닌 것을 확인하여 그를 바다에 수장시킨다는 것이 이 전설의 골자로 되어 있다. 장사가 빠져 죽은 곳에 그후 *서가 생겨 났고, 매달 그믐께 어민 몇 명이 이 장수서에 가서 제의를 지내는 기속이 오랜 세월동안 이어져 왔다 는 내용의 이야기가 덧붙여지고 있다.
설화의 소설화가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지만, 『근믐밤의 제의』 처럼 액자 속에 들어있는이야기 와 밖에 있는 이야기가서로 의미의 삼투현상을 잘 일으키고 있는 경우는 결코 흔치 않다. 별 상처나 의식이 없는 인물이 전설과 제의 행위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으로 꾸며졌더라면 이 소설은 그 흔해 빠지고 읽을 가치도 별로 없는 설화소설의 테두리에서 헤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현길언은 전설과 제의 행위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으면 서장수의 출현을 일종의 신앙으로 삼고 있는 인물을 등장시킴으로 써 용당개 전설이 오늘의 우리 삶에 가져다 줄수 있는 의미 의 파문을 한 껏 강변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작가 자신이 피상적인 리얼리즘에서 한발 크게 앞으로 내디디고 있음을 입증한 셈이 되었다.
작중<여자>에 의한 장수서를 향한 제의는 산자를 위한기원, 어둡고 괴로운 현실을 이기고 나가려는 삶의 자세, 영웅 대망론등으로 의미화 된다.
이 작품에서 제의의 의미는 연전에 발표되어 문제작의 하나로 꼽혀졌던 이청준의 소설 『비소밀교』를 떠 올리게 한다.
남주인공 과 여주인공이 각각 상대방의 얼굴에서 용당개 장수의 모습을 발견해 내는 것으로 『그믐밤의 제의』가 끝이 나고 있는 것을 보면 현길언이 역사나 시대에 아주 바짝 다가앉아 그 심저부를 뚫어지게 응시하고 있는 작가임을 더욱더 잘 알수 있게 될 것이다.
조남현<건국대교수 문학평론가>

ADVERTISEMENT
ADVERTISEMENT